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Jul 18. 2024

제로 다음엔 마이너스 시대? 컴온!

덜면 덜수록 오히려 좋아.

바야흐로 제로의 시대다. 제로 음료수, 제로 과자, 제로 아이스크림, 제로 요거트, 제로 맥주, 오죽하면 제로 마라탕까지 나오게 생겼단 우스갯소리가 들린담. 보통 제로는 당류를 대체당으로 바꾼 제품 앞에 붙는 수식어인데, 혈당이 질병부터 다이어트까지 연관돼 중요하게 다뤄지다 보니 기업에서도 제로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는 중이다. 예전에 제로 콜라는 콜라도 아니라며 폄하 받기 일쑤였지만 이젠 가당 제품보다 제로 제품이 더 많아 보이니 잠깐의 트렌드가 아닌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음을 실감한다.


'제로'는 마케팅 관점에서 무언가 '덜어냈다', 특히 '안 좋은 걸 덜어냈다'는 인상을 주어 소비자를 현혹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기피하고 싶은, 혹은 기피해야 하는 당류가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건강하다'는 이미지를 획득한다. 일반 소비자 중 한 명으로 대체당의 위험성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제로가 된다고 해도 탄산음료가 몸에 안 좋다는 건 뻔한 사실이기에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만 이런 시장 흐름이라면 정말 마라탕까지 제로가 나오겠단 생각이 든다. '당쩔'인 크루키에 두바이 초콜릿까지 얹어 파는 시장과 제로에 환호하는 시장이 동시에 흥하는 건 당혹감과 혼란을 주지만 한쪽이 극단으로 가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 반대가 활성화됨은 재차 겪어봤기에 익숙하기도 하다.


제로에 대한 관심과 시장 흐름을 살펴보며 제로의 시대가 지나면 무엇이 올까를 생각했다. 더하는 게 아닌 빼는 게 나은 거라면 나중엔 제로로 모자라 마이너스가 되는 시대가 올까? 개인적으론 마이너스의 시대가 오길 바랐다. 혹시 요아정 토핑 목록을 보신 적이 있는지. 무언가를 '더하는' 옵션이 엄청나게 많아 눈이 빠질 지경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덜어내는 옵션은? 거의 없다. 사람들에게 극단의 호불호를 선사하는 고수처럼 향이 강한 채소 혹은 맵기 조절을 위한 양념장을 덜어내는 정도가 다다.


이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한 일화가 하나 있다. 예전에 오이 향에 태생적으로 민감해 오이를 못 먹는 언니와 냉면을 먹으러 갔다. 분명 오이를 빼달란 요청을 했는데 어쩐 일인지 오이가 올려진 상태로 서빙이 되었다. 오이를 뺀 걸 주문했다고 하자 서빙하시는 분은 대수롭지 않게 젓가락으로 오이를 빼고 유유히 주방으로 사라졌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 냉면은 이미 오이 향이 배어버려 못 먹게 된 음식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이 상황을 보며 내가 느낀 건 '무언가를 빼는 게 우리에게 익숙한 옵션은 아니구나'라는 거였다. 일화로 예를 든 오이가 아니더라도 음식을 주문하며 뺄 수 있는 옵션이 늘어난다면 선택지는 물론 새로운 맛에 대한 개방성도 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월남쌈에서 새우와 고기를 뺄 수 있다면? 김치볶음밥에 햄을 뺄 수 있다면? 채식으로 가는 길도 넓어지지 않을까.


물론 이런 주장엔 맹점이 있다. 다양한 옵션의 '빼기'가 시행된다면 그만큼 요식업자들의 부담은 커지고 특정 재료를 제외할 때 기존 메뉴 가격에서 뺄 가격을 책정하기가 애매하다. 새로운 선택의 결과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나온 음식에서 특정 재료를 제외하는 것은 불필요한 쓰레기를 유발하며 소비자에게는 비용 낭비를, 요식업자에게는 재료 낭비를 초래한다. 떡볶이도 언젠가부터 떡만 넣거나 어묵만 넣는 옵션이 가능해진 것처럼 앞서 이야기한 옵션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제로가 처음 나왔을 때도 '이게 팔리겠나'하는 의구심은 분명 존재했을 테니, 마이너스라고 못할 게 무언가.


이런 시도는 프랜차이즈와 다른 개인 매장의 특장점을 더해준다고도 생각한다. 프랜차이즈는 어느 매장이나 같은 맛을 내는 게 모토이고, 그러다 보니 옵션의 다양화를 수용하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그만큼 많은 매뉴얼을 주어야 하니. 반면 개인 매장은 이런 니즈에 유동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물론 거기엔 적정한 기준선이 존재해야겠지만(김치찌개에 김치를 빼달라든가 본인이 주문해 놓고 별점 테러를 하는 건 적정하지 않겠죠..) 이런 시도가 거듭될수록 맛과 즐거움 또한 넓어질 것이라 믿는다. 채식도 굳이 '비건 식당'이나 '비건'을 애써 검색해서가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식당에서 옵션을 조절해 채식에 가깝도록 시도해 볼 수 있겠지. 그럼 채식도 그렇게 어려운 일을 아니게 될 거라 믿는다. 혹시나 요식업을 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부탁드립니다(찡긋).


개인적으론 모든 타코 집에 비건 옵션이 꼭 가능해졌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