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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Aug 01. 2024

비건 인증을 안 받은 비건식은 비건이 아닐까

비건 마크의 신뢰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먼저다

며칠 전 식재료 쇼핑에 나선 나. 한 바퀴 돌아보며 비건식, 식물성 제품이 눈에 띄게 늘어난 걸 흐뭇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다른 그림 찾기 게임에 참전하게 됐다. 통조림 햄인 두 제품이 식물성, 대체육, 플랜트라는 닉네임까지 다 똑같은데 어딘가 분명 다르다! 이 두 제품의 차이는 바로..! (아래 사진을 보고 여러분도 찾아보세요. 큼큼)


무엇이 무엇이 다를까요

답은 바로 비건 인증 마크의 유무였다. 분명 두 제품 모두 식물성 대체육을 활용해 만든 통조림 햄인데 왜 어떤 제품은 비건 마크가 있고 어떤 제품은 없지? 그저 기업의 적극성의 문제인 건가 아님 성분이나 제조 과정의 차이인 걸까. 궁금증이 생겨 찾아봤지만 동원 제품이 비건 인증을 받지 못한 이유는 발견할 수 없었다(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그렇다면 비건 인증을 받기 위한 기준은 뭐고, 이걸 받기가 복잡한지 찾아보았다. 일단 비건 인증 마크를 부여하는 공인기관이 하나로 존재하지 않고 사기업(혹은 기관)이 기업의 의뢰를 받아 심사한 후 마크 사용을 허락하는 형태였다. 다음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장 흔히 받는 비건 인증 마크를 수여하는 기관과 인증 조건이다.


1. 한국비건인증원: 우리나라 대표 비건 인증 기관. 

[인증 조건]

- 동물 유래 원재료를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제조·가공, 조리 과정. 직·간접적 모든 경우를 포함)

- 동물을 이용한 실험을 하지 않아야 한다.(위탁 실험도 금지)

- 제품 생산 공정 전 중 후 교차오염이 없어야 한다.


2. Vegan Society 영국 비건 협회

[인증 조건]

- 제품 제조 및 개발에 쓰이는 모든 원료에 동물성 제품, 부산물 또는 파생물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 제품 초기단계부터 회사와 관계된 제3의 회사까지 모두 동물실험을 하지 않아야 한다.

- GMO를 포함하거나, 포함할 여지가 있는 경우 기재해야 한다.


3. V-label 이탈리안 베지테리언 협회

[인증 조건]

-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 및 테스트를 하지 않아야 한다.

- 동물성 원료, 부산물을 일체 배제해야 한다.


4. EVE VEGAN 프랑스 비건 인증기관

[인증조건]

- 비동물성 원료, 패키지, 포장재를 사용해야 한다.

- CMR(발암성이나 독성) 물질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원료를 사용하며, 제조와 테스트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아야 한다.



들여다보면 표현이 조금 다를 뿐 대체로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요건으로 내세운다. 패키지나 포장재까지 제한하고 있는 프랑스 비건 인증 마크는 받기가 더 까다롭기도 하고요. 내가 쇼핑 중 본 통조림 햄의 마크는 이탈리안 베지테리언 협회로부터 수여받은 것인데, 그럼 적어도 동물성 원료나 부산물은 배제하고 동물 실험 역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다만 한국비건인증원을 놔두고 이탈리안에서 받은 이유가 궁금하군요.


비건 인증을 수여하는 기관이 단일화되어 있지 않고, 그 요건도 다 다르며 한국 제품은 한국 인증만 받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소비자들의 의심을 부르기도 한다. 나 또한 최근 비건 관련 제품을 다수 구매하며 비건 인증이 있는 것만 '완전' 비건 식품이고, 같은 재료와 성분임에도 비건 인증 마크가 없으면 의미가 없나? 하며 헷갈리기 일쑤였다. 또한 이 글을 쓰며 기사를 찾아보니 비건 인증 심사에 들어가면 현장 검증이 거의 없이 서류만으로 비건 마크를 부여할지 판단한다고 하는데.. 믿을만하다고 보겠나 이거. 게다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비건 인증 마크를 발급받는데도 수수료가 들고, 동물 DNA 보유 실험까지 해야 한다니 인적, 경제적 자원이 마련된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영세기업은 비건 마크를 발급받기도 어렵겠단 생각이 든다. 그럼 또다시 소비자들은 미궁의 프로세스에 의해 발급된 비건 마크만 믿고 대기업 제품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비건 제품이 시장의 메인 아이템이 아니고 2~3년 전부터 갓 올라오기 시작한 시장이다 보니 아직까지 많은 것들이 엉성하고 미비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프랑스 올림픽과 폭염과 스콜로 점철된 이상 기후 때문에 비건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지금, 빠르게 프로세스를 정비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이 좋은 때를 날려버리진 않을까. 기업은 기업대로 새로운 먹이를,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좋은 발걸음을 내딛을 기회를 애매한 인증 하나로 뭉개버린다면 얼마나 아까울 거야. 비건은 소비자만 노력할 일이 아니다. 정말 믿을 수 있어야 소비해 달라고 납득도 시킬 수 있지, 우리 다 같이 움직여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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