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김치에 젓갈이 안 필요할 수도..?
전에는 집에 있는 채소, 과일들을 먹거나 엄마가 해준 반찬을 저항 없이 수용하는 데 그쳤지만 요새는 궁금한 비건 제품이 있으면 한 번씩 사 먹어보는데 맛을 들였다. 며칠 전에도 마켓컬리에서 '비건', '채식'을 검색해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던 차, 내 눈에 띈 제품. 바로 비건 김치였다. 비건 김치는 뭐가 다를까 했더니 젓갈이 들어가지 않는 게 차이라고. 국내 제품 중에 비건 마크를 달고 나온 제품이 별로 없기도 하고, 김치 하면 빠지지 않는 한국인으로 호기심에 주문해 봤다. 과연 맛이 있으려나.
우리 집은 매해 김장을 하지만 가끔 김치를 사 먹곤 했다. 배추김치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 급하게 구색 맞추기용으로 사 먹었고, 총각김치나 갓김치처럼 집에서 바로 찾아 먹기 어려운 종류는 생각날 때마다 사 먹었다. 요즘처럼 김장이 드물어진 시대에 '엄마표 김치'를 고집하려는 건 아니지만 길든 입맛에 판매용 김치는 너무 달거나 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더더욱 '사 먹는' '비건' 김치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물건이 도착했다는 카톡 알림에도 걸어 나가는 속도가 더딘 이유였다.
받아 든 비건 김치는 후기에 쓰인 대로 크기가 쁘띠했다. 400g의 작은 단지는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영 힘을 못 쓰겠다 싶기도. 그래도 '김치는 젓갈 맛'이라는 대전제를 깨고 비건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데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어떻게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선택한 건 역시 라면. 마침 같은 기업에서 나온 채식 라면이 있기에 완전한 비건식 한 끼를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라면에 김치가 비건식이야? 하겠지만 이게 되네요.
정확히 5분 끓인 라면을 앞에 두고 김치를 덜어 상차림을 완성했다. 두근두근. 새롭게 도전하는 음식은 첫입이 가장 설레기 마련인데요. 긴가민가하며 한입을 먹어보았는데, 엥 이거 완전... 그냥 김치 아니냐. 나름 비싼 돈을 들여 좋은 음식들로만 훈련한 민감한 혀임에도 그냥 김치와 비건 김치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다만 회사마다 김치 맛의 차이가 있어 그런지 전에 먹은 비비고 배추김치는 매우 달고 텁텁한 맛이었는데 이 비건 김치는 맛이 더 명료하게 떨어진달까. 간간하고 뒷맛이 깔끔해 라면과 먹기 딱 좋았다. 같이 먹은 라면도 채식 라면이라 먹고 나면 느글거리고 속이 부대끼는 일반 라면과 달라 선호하는데, 이 둘이 같이 먹으니 간편식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반은 농담, 반은 진심으로 구매한 비건 김치를 맛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먼저 음식을 만들 때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재료들이 어쩌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단 것. 개인적으로 비건 혹은 채식이 '덜어냄의 미학'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부 요소들을 음식에서 적절히 걷어냄으로써 뒤에 가려진 재료들의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비건 김치는 가장 적절한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김치라면 으레 젓갈이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깨고 있는 재료들로 충분한 맛을 구현했으니. 그리고 점점 더 비건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김치를 사면서도 한국에 사는 비건 외국인이나 관광객을 위한 체험용인가? 싶었고 물론 그 의도도 있을 수 있겠다만, 한국인에게 상징적인 음식을 비건 제품으로 만든다는 건 보다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비건 혹은 채식의 중요성 내지 필요성을 절감하고 가장 익숙한 메뉴들부터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반가운 일이다.
이번에 산 김치로 김치찌개도, 김치볶음밥도 한번 해 먹어 볼 예정이다. 언뜻 보면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이런 메뉴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나중엔 우리 집 김장에서도 젓갈을 빼볼지도. 이렇게 또 한 번의 새로운 시도가 또 하나의 삶의 익숙한 모습을 바꿔주다니! 설레고 기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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