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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ul 25. 2024

김치의 민족에게 비건 김치의 등장이라

어라..? 김치에 젓갈이 안 필요할 수도..?

전에는 집에 있는 채소, 과일들을 먹거나 엄마가 해준 반찬을 저항 없이 수용하는 데 그쳤지만 요새는 궁금한 비건 제품이 있으면 한 번씩 사 먹어보는데 맛을 들였다. 며칠 전에도 마켓컬리에서 '비건', '채식'을 검색해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던 차, 내 눈에 띈 제품. 바로 비건 김치였다. 비건 김치는 뭐가 다를까 했더니 젓갈이 들어가지 않는 게 차이라고. 국내 제품 중에 비건 마크를 달고 나온 제품이 별로 없기도 하고, 김치 하면 빠지지 않는 한국인으로 호기심에 주문해 봤다. 과연 맛이 있으려나.


우리 집은 매해 김장을 하지만 가끔 김치를 사 먹곤 했다. 배추김치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 급하게 구색 맞추기용으로 사 먹었고, 총각김치나 갓김치처럼 집에서 바로 찾아 먹기 어려운 종류는 생각날 때마다 사 먹었다. 요즘처럼 김장이 드물어진 시대에 '엄마표 김치'를 고집하려는 건 아니지만 길든 입맛에 판매용 김치는 너무 달거나 간이 애매했다. 그래서 더더욱 '사 먹는' '비건' 김치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물건이 도착했다는 카톡 알림에도 걸어 나가는 속도가 더딘 이유였다. 


뒤에 깔끔하게 비워진 라면과 김치 접시를 보세요..


받아 든 비건 김치는 후기에 쓰인 대로 크기가 쁘띠했다. 400g의 작은 단지는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영 힘을 못 쓰겠다 싶기도. 그래도 '김치는 젓갈 맛'이라는 대전제를 깨고 비건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하나 더 만들었다는데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어떻게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 선택한 건 역시 라면. 마침 같은 기업에서 나온 채식 라면이 있기에 완전한 비건식 한 끼를 만들어버렸다. 어떻게 라면에 김치가 비건식이야? 하겠지만 이게 되네요. 


정확히 5분 끓인 라면을 앞에 두고 김치를 덜어 상차림을 완성했다. 두근두근. 새롭게 도전하는 음식은 첫입이 가장 설레기 마련인데요. 긴가민가하며 한입을 먹어보았는데, 엥 이거 완전... 그냥 김치 아니냐. 나름 비싼 돈을 들여 좋은 음식들로만 훈련한 민감한 혀임에도 그냥 김치와 비건 김치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다만 회사마다 김치 맛의 차이가 있어 그런지 전에 먹은 비비고 배추김치는 매우 달고 텁텁한 맛이었는데 이 비건 김치는 맛이 더 명료하게 떨어진달까. 간간하고 뒷맛이 깔끔해 라면과 먹기 딱 좋았다. 같이 먹은 라면도 채식 라면이라 먹고 나면 느글거리고 속이 부대끼는 일반 라면과 달라 선호하는데, 이 둘이 같이 먹으니 간편식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더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반은 농담, 반은 진심으로 구매한 비건 김치를 맛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먼저 음식을 만들 때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재료들이 어쩌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단 것. 개인적으로 비건 혹은 채식이 '덜어냄의 미학'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부 요소들을 음식에서 적절히 걷어냄으로써 뒤에 가려진 재료들의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비건 김치는 가장 적절한 사례가 아니었나 싶다. 김치라면 으레 젓갈이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을 깨고 있는 재료들로 충분한 맛을 구현했으니. 그리고 점점 더 비건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김치를 사면서도 한국에 사는 비건 외국인이나 관광객을 위한 체험용인가? 싶었고 물론 그 의도도 있을 수 있겠다만, 한국인에게 상징적인 음식을 비건 제품으로 만든다는 건 보다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비건 혹은 채식의 중요성 내지 필요성을 절감하고 가장 익숙한 메뉴들부터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반가운 일이다.


이번에 산 김치로 김치찌개도, 김치볶음밥도 한번 해 먹어 볼 예정이다. 언뜻 보면 거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이런 메뉴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나중엔 우리 집 김장에서도 젓갈을 빼볼지도. 이렇게 또 한 번의 새로운 시도가 또 하나의 삶의 익숙한 모습을 바꿔주다니! 설레고 기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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