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맛집으로 새롭게 쓰이는 맛지도.
채식을 일상의 패턴으로 만들며 생긴 습관 하나. 외출할 일이 생기면 주변 '비건 맛집'을 찾아본다. 이전의 삶이라면 '사당 맛집', '사당 술집', '사당 핫플'을 검색했겠지만 이젠 '사당 비건', '사당 비건 맛집'을 검색하는 식이다. 비건 제품만큼이나 비건 맛집, 카페, 베이커리도 존재해 왔으나 무심했던 탓에 매번 발굴(?)하는 느낌이고, 좋은 곳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함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본 적 없는 새로운 메뉴라면 새로운 대로, 익숙한 메뉴를 비건으로 꾸려냈다면 그거대로 먹는 즐거움이 있다.
주거지가 수도권이다 보니 대체로 방문하는 비건 식당 혹은 카페는 서울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에는 백화점에 입점한 비건 디저트를 먹기도 했고 연남동에 유명한 베이커리를 가기도 했다. 점점 익숙해지자 누군가와의 식사 때 비건 식당을 제안하는 일도 잦아졌고 누군가 먼저 "여기 비건 식당이라는데 한번 가보실래요?" 묻기도 했다. 신기한 건 처음에는 내가 지금 가는 곳이 '비건 식당'이라는 사실을 의식했지만 메뉴를 고르고, 서빙되어 식사하는 모든 순간에는 지금 입으로 향하고 있는 게 '다른' 음식이라고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용 곤충을 먹는 것도 아니고(난 정말 이 단어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또 하나의 익숙한 외식 메뉴가 되었을 뿐이다.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비건식에 대한 선호 및 관심은 여성들이 좀 더 높아 보인다. 여성들이 좀 더 선호하는 베이커리나 이탈리안 식당을 가보았기에 내리는 성급한 결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여성들이 보통 더 높기도 하고, 남성들의 소울푸드라 불리는 돈까스, 제육볶음, 국밥 등이 비건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남성 다수가 비건식을 자발적으로 접할 일이 많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둘째, 비건이라는 타이틀은 그저 수많은 특성 중 하나를 설명하는 수식어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 처음에야 '비건 음식이군'하는 생각을 했지만 식사하며 나를 포함한 일행들의 반응은 '맛있다' 혹은 '괜찮다' 등의 반응으로만 갈렸다. '비건치고' 맛이 있다, '비건인 점을 감안할 때' 괜찮다가 아니었다. 일단 경험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메뉴와 맛에 집중하지 '비건'이란 특성은 쉬이 잊히는, 다르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특성임을 깨달았다. 이는 비건식의 제공량을 늘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만 한다면 소비 또한 점차 늘어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은 비건식이야말로 요리하는 이의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되겠다는 점이다. 내가 방문했던 한 베이커리는 케이크, 구움 과자 등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메밀가루를 베이킹에 활용한다고 했다. 최근 방문한 식당은 케일, 바질과 시금치, 숙주, 마늘, 대파를 활용해 크림 파스타를 선보였다. 메뉴 상세 설명이나 재료의 조합을 보고 있자면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그 아이디어에 손뼉을 치게 된다. 누군가는 '일반 메뉴도 고심한 결과다' 혹은 '비건식이라 맛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냐' 하겠지만 제한된 재료에서 익숙한 맛을 내거나, 새로운 재료의 맛을 발굴해 가는 그 여정이 어찌 순탄하다 하겠나. 이미 모든 게 나와 있는 듯한 요식 세계에 비건식은 창작자만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블루오션이 아닐까 싶다.
비건 맛집을 다니며 아쉬운 점이 없나 돌아보면 당연히 있다. 식당 수가 적고 수요층이 많은 서울에 위치해 있어 경기도민은 오고 가기가 힘들다. 맛도 맛이지만 접근성이 중요한 사람에겐 크리티컬 한 요소다. 그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어떤 곳은 맛과 개성만으로 지인에게 추천하고 싶기도 했고, 어떤 곳은 '여긴 백화점 올 때마다 들러서 사 먹겠다' 싶은 곳도 있었다. '지인 추천 맛집', '백화점 맛집'으로 맛 지도를 그렸던 그때처럼 새로운 여정들이 맛 지도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대항해를 하는 콜럼버스의 마음으로, 다음엔 어디로 떠나볼까나.
+
위 글에서 언급한 비건 맛집들은 하단 인스타 계정에 정보가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