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도 하고 저속노화도 되면 그거야말로 럭키비키.
'저속노화'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몇 달 전부터 트위터를 달군 키워드로 노년내과의사인 정희원 교수가 주창한 식이요법 및 생활 습관을 의미한다. 마라탕, 탕후루 등 맵고 짜고 단 음식들이 노화를 가속하는 반면, 교수님이 제안한 저속노화 식단은 매우 단정하고 깔끔하다. 렌틸콩, 현미, 잡곡 등을 넣은 밥을 먹고 채소류나 흰 살 생선을 곁들이는 식이다. 마라탕을 먹으며 개운함을 외치는 사람에게 렌틸콩 밥은 처음이야 맛이 없겠지만 먹다 보면 정들고 입맛도 도는 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저속노화 식단을 보면 채식과도 결이 맞닿아 있다. 일단 콩으로 단백질을 챙기는 것, 그리고 녹황색 채소나 과일을 주로 먹는 것이 대표적이다. 저속노화 커뮤니티(https://x.com/i/communities/1808508988780404836)에도 양상추, 과일이 들어간 아침용 샐러드를 프렙 해놓거나 달달한 간식을 대체하기 위한 초코 바나나 등 채식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창의적인 레시피들이 가득하다. 우스갯소리로 자극적인 음식 사진을 올리는 경우도 있는데, 말벌 아저씨 마냥 등장해 장난스레 '손절'을 외치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며 저속노화 자체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밈이자 게임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처음 '저속노화'라는 키워드를 받아 들었을 땐 5060 세대도 아니고 벌써 노화에 대해 젊은이들이 이렇게 관심이 많다고? 하는 놀라움을 먼저 느꼈다. 몇몇 기사에서 교수님이 이야기하길, 젊은 세대가 저속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연스레 바이럴이 이루어진 이유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만큼 자극적인 음식에도 쉽게 질렸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또 여러 인플루언서가 저속노화에 대해 언급한 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교수님이 말한 '젊은 세대'에 내가 포함될진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이제 젊은 사람들도 '그냥 이렇게 흥청망청 살다 죽지 뭐!' 하기엔 인생이 너무 길다는 걸 윗세대를 목격하며 체감하고 있고,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반발심에 오히려 느리게 가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지지 않았나 싶다. 결국 튜닝의 끝은 순정이듯 자극적이고 빠른 것도 처음에나 흥미롭지 결국 다시 '순함'을 찾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웃픈 사실. 최근 커뮤니티 인기 글을 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저속노화를 해야 급속 사망이 가능하다고. 건강하자고 먹는 음식인데 이게 무슨 소리야 싶으신가요. 장수 의학 분야 연구자인 피터 아티아의 강연에서 나온 얘기인데,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하고 운동하는 건강한 생활을 유지해야 시동 꺼지듯 생물학적 사망에 이를 수 있단 얘기다. 이렇게 살아야 애초에 생명 유지 기간도 길고, 사망에 이를 때도 약으로 고통스럽게 연명하는 게 아니라 한방에 확(?) 갈 수 있다고. 흔히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말할 때 '침대에 누워 연명 치료받느니 잠자듯 확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저속노화 식단은 그걸 가능케 한단다. 이 트윗이 올라오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원하는 깔끔한 죽음을 위해서라도 저속노화 식단이 답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쩐지 슬퍼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흑.
개인적으로는 되는대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기에 교수님이 말씀하신 저속노화에 가까운 식단을 이미 하고 있긴 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야채로 최대한 당수치를 안정화하고 점심때는 단백질 위주로 섭취, 저녁은 가볍게 먹으려 한다. 그사이에 끊지 못한 당이 함정이지만요. 최대한 느리게 나이 드는 것도 좋고 한 방에 가는(?) 것도 좋지만 그냥 그게 잘 맞으니 유지할 뿐이다. 갈수록 기름지고 헤비한 음식을 먹으면 몸에 부담이 온다는 걸 선명히 느낄 때가 잦아지고, 설탕이 그득 들어간 디저트를 먹고 나면 그날 밤 묘하게 못생기고 부어 보이는 게... 이제 먹는 음식이 곧 내 상태를 만든다는 걸 처절하게 실감하는 때가 됐을지도. 어쨌든 채식하며 저속노화까지 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럭키비키 아니겠어요. 저속노화에 이은 채식 붐까지 오길 기다리며, 오늘도 콩을 불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