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Oct 10. 2024

네, 채식이요. 제가요!

언젠간 이 문장에 자신감 있게 느낌표가 붙는 날이 올 거야!

채식에 관한 글을 쓰자, 마음먹었던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잡다한 생각을 올리던 브런치에 채식 관련 글을 썼더니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왔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껏 존재했으나 의식하지 못했던 비건의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실감했다. 자발적으로 글을 쓰지만 늘 소재가 궁한 사람에게 하나의 시리즈를 완성할 수 있을 만큼의 세계를 가진 아이템은 소중했고, 그렇게 글을 이어온 게 오늘로써 30편째다. 이쯤 되면 아이템 발굴 성공!이라 외쳐도 무방하려나.


아마 이 연재물을 지금까지 지켜보신 분들이 궁금하실만한 게 있다면 "그래서, 비건이 되었나요?" 하는 내용일 거라 짐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완전 비건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겠다. 연재하는 동안 수많은 비건식 제품을 접하고, 비건 식당이나 행사에도 가보고, 비건 관련 콘텐츠를 보다 못해 직접 만들기까지 한 사람에게서 나온 대답치곤 조금 기운 빠지는 답이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글에서 말한 대로 원래 식단 자체가 비건에 가까웠고, 그 이상을 요구할 경우 반작용이 강한 체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비건이 아니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먹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보단, 내가 지속할 수 있는 형태의 비건식을 이어가자는 결심은 나에게도, 이 글을 보는 다수의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완전 비건은 아니더라도 이전과 비교했을 때 자주 먹는 간편식, 간식, 음료 등이 다 비건 제품으로 바뀌었으니, 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생긴 변화로 꽤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최근엔 콜라도 비건으로 바꿨습니다 엣헴.


채식 혹은 비건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은 채식의 양면성을 엿보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가벼울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나 무거운 이야기가 되는 게 채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다. 흔히 비거니즘이라 부르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동물과 자원을 보호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차라리 가벼웠다. 육고기 소비를 덜 하고, 동물실험을 하는 뷰티 브랜드 소비를 지양하고 매연을 발생시키는 교통수단을 멀리하며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소비 방식을 택하는 것. 제로웨이스트든 환경보호 운동이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들이라 그걸 실천하고 글로 옮기는 건 큰 거부감이나 무게감이 없었다. 내가 무겁다고 생각했던 건, 기존 육식 위주의 식문화나 그것을 둘러싼 시장, 소비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흔들 때 가져야 하는 태도였다. 나는 (가볍게라도) 채식을 하자고 하는 입장이니 잡식성 문화에 대한 아쉬움, 때론 반대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의견이 잡식성 식단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때마다 내가 취해야 하는 태도를 정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 사실 저도 잡식성 인간인데요, 그래도 채식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는 건 진정성과 설득력이 떨어지고, 비건 입장에서만 얘기하자니 공감대 형성이 아예 안 되는 것 같고. 또 채식이라는 행위는 채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채소 가격의 변화 등 시장에 관해서도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는데, 이걸 이야기하다 보면 자칫 정치적 견해까지 의심받게 될까 봐 입을 닫아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채소를 먹는 행위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기에는 둘러싼 이해관계와 사회구조가 너무 무겁고 컸다.


그럼에도, 가벼운 이야기로라도 채식 연재를 지속한 데는 점점 늘어나는 구독자 수와 조회 수도 한몫했겠지만 결국 '지속성'이라는 큰 맥락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지속 가능한 비건 식단으로 채식을 이어가자 했던 마음처럼, 이 글로 큰 울림이나 당장의 격심한 변화를 일으키기보단 일상에 스며들어 무의식중에 채식이란 공간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생각나는 그 사람을 '뭐야? 나 이 사람 좋아하나?' 하며 자각하듯,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채식이 그런 대상이 되길 바란 것이다. 다만 '채식!'이라는 평면적인 단어보단 언젠가 각자의 언어와 개념으로 정의될 작은 세계가 되었으면 했다. 내가 처음 채식을 접하고 채식을 비건 빵이나 비건 김밥으로 정의 내리다 비건과 둘러싼 시장 상황까지 개념들이 뻗어나간 것처럼,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대리경험으로나마 비건에 대한 세계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어떠셨나요. 제 바람대로 되었나요. 안되었다면.. 슬프지만요.


처음 시리즈 제목을 '네? 채식이요? 제가요?'라고 지을 때 의도는 "엥?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가 채식을요?" 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인생에서 채식이라곤 생각도 못 한, 안 했던 사람이 채식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 생경함을 그대로 반영한 제목이었다. 첫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렇게 진심이 되리라 생각 못 한 것도 있고요.. 이제까지 쓴 글들과 오늘 쓴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네, 채식이요. 제가요!라고 문장부호를 바꿔 달아도 되겠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형태로, 어떤 태도로 비건을 실천할지 이제 조금은 알겠고, 앞으로는 이걸 이어가는 방법을 꾸준히 발굴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어떤 것들이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처음의 시도가 그러했듯 '뭐 한번 해보지!'라는 마음으로 해봐야지. 그 길 끝에 누군가 묻는다면 "네!!!! 채식이요!!!! 바로 제가요!!!!"라고 대답할지도?






*안녕하세요, 구독자분들.

30화라는 긴 여정동안 채식 시리즈를 꾸준히 좋아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

중간중간 공감과 본인의 경험을 표현하신 댓글, 좋아요 등을 보며 30화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채식 시리즈는 일단 30화로 마무리가 되지만 채식에 관한 글은 꾸준히 써볼 예정입니다. (후속 시리즈가 또 나올 수도..? 흐흐)

혹여 채식 시리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하는 내용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댓글로 달아주세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