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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Sep 26. 2024

흑백요리사에 비건이 낄 자리는 없는가

비건도 맛있는 거 좋아하는데요 힝.

*해당 글은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내용을 담고 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혹여 스포가 싫으시다면 프로그램을 보고 읽으시길 권장드립니다!


요즘 온갖 커뮤니티를 뒤덮은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지요. 바로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다. 출연한 셰프들의 식당명과 식사 후기들, 과거 방송 내력까지 SNS를 도배할 만큼 대한민국은 지금 '흑백요리사'로 핫!하다. 아니, 셰프들이 요리 실력으로 경연하는 프로그램은 오래전부터 있었잖아? 이게 뭐가 그리 특별해?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니 다르더라고요? 재밌더라고요? 일단 심사위원의 눈을 가린 파격적인 블라인드 심사로 정말 '맛'만 보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점, 흙수저와 금수저를 흑수저와 백수저로 차용한 아이디어, 그 안에서 나오는 치열한 서열(a.k.a 자존심) 싸움이 다른 요리 경연 프로그램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라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유명 셰프들이 본인 이름을 걸고 하는 'competition'? 이건 한국인들이 못 참지.


금주 공개된 회차까지 세 번의 경연이 있었고, 첫 번째 경연에서 본인이 잘하는 요리로 '전문성'을 보여줬다면 두 번째 흑백 대결에서는 주어진 재료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숙련된 상태로 다듬을 수 있는지 '독창성'과 '기본기'를 심사했다. 그리고 세 번째 팀 대결에서는 팀 내 화합과 대규모 인원을 만족할 수 있는 요리를 할 수 있는지 '커뮤니케이션'과 '대중성', '완성도'를 중점적으로 보여줬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가장 기본일 뿐, 본인의 레스토랑을 걸고 나오는 만큼 셰프에게 기대하는 맛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숙명을 지닐 수밖에. 본인만의 킥이든,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든 컨셉이든 하다못해 플레이팅이라도! 경연마다 핼쑥해지는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세 번의 경연을 통해 셰프들의 전문성, 본인의 경력이나 자부심을 내려놓고(그만큼 단단한 자부심이기에 그럴 수 있겠단 생각도 들지만) 팀 전체를 위해 묵묵히 본인의 일에 집중하는 프로다움, 후배의 승리에 진심 어린 미소로 응원하는 어른스러움, 급박한 상황에 맞는 전략을 짜는 책략가의 모습 등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 멋진 프로그램 안에 비건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단 한 번 비건 요리가 나오긴 했다. 흑백 대결에 참여할 20인의 흑수저 셰프를 뽑을 당시, 한 셰프가 본인이 잘하는 음식으로 베지테리언 사시미와 후토마키를 선보였다. 짧은 심사였지만 미슐랭 3스타 셰프에게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경력이 출중한 백수저 셰프들도 해당 메뉴에 대한 궁금증과 호감을 표했다. 하지만 그 이후론? 비건 메뉴는 자취를 감췄다.



일전에 비건식이야말로 셰프들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는 메뉴다,라며 개인적인 평을 한 적이 있다. 제한적인 식재료 안에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새로운 맛을 선사한다는 게 힘든 일이기에 비건식이야말로 셰프의 아이디어와 신선한 접근법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장르가 아닐까 싶어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반증하듯 해당 셰프는 우리가 대부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조리법으로 멋진 비건 메뉴를 내놓았고, 그 결과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만일 이런 시도가 계속 이어졌다면 경쟁력이 없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프로그램 포맷 상 메인 식재료를 정해놓고 경연을 진행했는데, 흑백팀 경연 당시 육고기와 생선 두 가지만 메인 재료로 정해놓은 건 비건을 완전히 배제한 장면처럼 보였다. 아마 100인 평가단 중에서도 비건은 없었겠지. 백종원 심사위원이 요리를 평가할 때 "한국 음식을 외국인들에게 알리기 좋겠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는데, 한국 혹은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겐 비건 음식이 대중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넷플릭스 콘텐츠가 해외까지 방영되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비건을 주제로 한 경연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한국의 수많은 반찬과 국, 탕 중 채소만으로 훌륭한 맛을 낸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흑백요리사는 5회 차가 남았고, 8회 예고편을 보니 패자부활전은 먹방 유튜버들을 위해 편의점 음식을 활용한 요리를 만드는 듯하다. 두 명의 전문 심사위원에서 100인의 대중으로, 먹방 유튜버들로 심사 대상에 따라 제공되는 식재료가 다른 것도 이해는 간다. 흑백요리사 제작진이 한국인들의 대중적인 입맛을 어떻게 고려했을지 대강 가늠이 되는 부분이다. 비건이 주류 식문화다!라고 이야기하기엔 성급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언젠가 요리 경연대회에서도 채소가 메인이 될 날이 오려나. 그게 언제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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