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계절이 지나면 1

우기(雨期): 때때로 녹색 계절이라는 용어가 완곡어법으로 쓰이기도 한다.

by songsari

2023년 6월 말 낯선 도시에 정착한 첫날, 새로운 동료들과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처음 만난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선물들을 건네며 대화를 이어갔지만 익숙지 않은 언어로의 대화는 쾌적한 실내 공기가 무색하게 진땀을 흘렸다. 보글보글 끓는 핫팟 앞에서 묵직하게 귀를 울리는 천둥소리는 실내의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와 대비되는 두려움이었다.

새로운 동료들과의 저녁 식사,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곳!

낯선 천둥소리가 두려운 건지,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가 두려운 건지 분간할 수 없는 그날은 처음 낯선 땅, 낯선 하늘에서의 비 오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나에게 비 오는 날이란

후각과 촉각에 집중되어 있다. 코 끝까지 화- 하게 촉촉해지는 비냄새, 평소보다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 바람을 타고 우산을 피해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어깨에 떨어지고 바지 끝자락이 젖어 가면서 촉각은 온통 곤두세워진다.

이곳에서의 비 오는 날은 시청각이 되었다. 바닥에 무겁게 떨어지는 빗방울의 둔탁한 찰과음, 실제로 들어본 적도 없는 총성같이 울리는 천둥소리, 번쩍이는 번개 빛.

종종 잠을 청하려 머리를 눕히면 두려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렇게 귀를 막고 겁에 질린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 없는 수화기 너머의 존재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잠에 들었다.


근 1년 간, 우산을 꺼내든 적이 없었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쓸 수 없었다고 해야겠다.

스콜이라는 기상 현상에서 바람은 돌풍보다는 지속시간이 길고 풍향도 돌변한다. 갑자기 벼락 같이 비를 쏟아내리다가 수 분만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평소처럼 해가 쨍하고 날씨가 바뀐다는 것이다. 결국, 비 오는 날은 비를 피해야 하는 날이다. 나에게 이곳의 비는 예측할 수 없으며, 심장이 두근거리게 두려울 만큼 요란했으며 피할 수 없이 갑작스럽고 불편했다.

촉촉해 보이지만 외부는 우르르 쾅쾅

날씨와 마찬가지로 나의 일상도 적응해야 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과 이해할 수 있지만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한계, 가치관, 문화가 다른 이들과 팀이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


고요하고 외로운 시간으로 반년을 흘려보냈다.

감사히도 가족, 친구들이 한국에서 넘어와 휴가를 함께 했고 그들이 랜딩 하는 날들을 손꼽았다.

몸과 마음을 쏟아 일을 했다. 돌아오는 피드백은 참담했지만. (당시 현지 HR은 연장 근무를 줄이기를 요구했다.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에게 고강도의 업무와 긴 업무체류 시간으로 보여,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나는 타국에서의 불안, 외로움을 피할 수 있는 우산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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