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에서 Inspiration까지

쓰는 인간의 꿈

by songsari

수십 번쯤 꿈을 갈아치웠다.

꿈을 찬찬히 돌아보니, 나는 참 재밌는 인간이었는데. 재밌는 인간에게는 꿈의 의미도 다양하다. 자아가 자리 잡기 전까지 꿈은 오로지 dream이었겠다. 자고 일어나면 희미한 잔상이 떠오르는 꿈들. 황당하고 우습다가도, 지독하게 무섭고 향긋한 오감의 착각 같았던 것들이 오로지 꿈(dream)이던 시절, 우리는 사전적 의미로 가장 꿈같은 꿈을 꾸고 살았겠다. 우주여행을 떠나고 하늘을 날며 에메랄드빛 바다에 안전하게 착지하는 꿈. 어릴 적 이유 모를 악몽이 잦았던 타입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아, 꿈이구나 하며 아늑한 내 방 천장을 반갑게 맞이했다. 언급한 바와 같이 25년 전 꿈이란 그저 Dream에 불가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것은 Goal의 의미를 띠었고 장래희망이라는 타이틀로 한시도 쉬지 않고 인생을 따라다녔다. 학창 시절, 교무실로 제출했던 4칸짜리 빈칸에는 부모님이 바라는 자녀의 장래희망, 나의 희망을 채웠다. 현실성, 부모님의 기대와 요망. 누군가는 3cm짜리 칸 안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괴리에 대해 끊임없는 단죄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꽤 긴 시간 동안 꿈은 ‘현실에서 꼭 되어야 할 무언가‘ 로 둔갑해 내 꽁무니를 좇았다. 내가 꿈을 좇는 것 같지만 실은 나를 까맣게 덮칠 수 있는 긴 그림자가 되어 무겁게 나를 끌고 다녔다. 그림자만 한 사이즈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성적이 필요하고 그만한 대학교에 진학해야 했던 것이다.


소싯적 꿈(goal)은 꽤나 한결같았다.

아나운서, 기자, 프로듀서와 같은 언론인의 종류로 10년 간은 오락가락 그 언저리의 무언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로부터 10년째 되던 해, 급작스럽게 더 많은 것이 되고 싶었는데 1. 국정원 공무원: 7급 공무원이라는 오락 영화에서 세계를 지키는 공무원의 역할에 심취했었다. 부모님은 항상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고 나 또한, 저런 공무원이라면 정년퇴직을 향해 묵묵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묵묵히? 하는 업무는 없어 보였지만, 실제로 나는 취업 준비를 하며 국정원 채용 공고를 꽤나 뒤적였다. 태권도 3단, 유도 혹은 합기도 3단 이상의 유단자라는 기준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곳은 감히 발 디딜 수 없는 다른 세계임을 명확히 인지했다. 2. 래퍼: 부산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심취하다 못해 언더 그라운드에 빠진 나는 혼자서 공연을 관람하고 라디오 방송에 랩 가사를 투고해보기도 했지만 관심일 뿐 소질이 영 없음을 내심 잘 알고 있었다. 3. 영화감독: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빠져 청소년 관람 불가였던 복수 3부작을 보고 또 보고, 아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했어야 했는데… 그러다 다큐멘터리 3일에서 방영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의 3일에 심각한 낭만을 느끼고, 당시 영화과 진학을 꿈꿨다. 진심으로. 아, 다큐를 보고 또 볼 그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진학했을지도 모르는데 탄식이 절로 나온다. 당시 쓰다 만 이상한 시나리오는 언젠가 완성이 되기나 할까. 물음표다.


복잡 미묘하고 일관성 없던 꿈의 역사는 성인이 되며 조촐히 막을 내렸다.

인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서 나는 다시 언론인이 되고 싶다는 꿈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의 눈에는 그나마 덜 비현실적이라 여겨지는 꿈(goal)이었으리라. 그래서일까. 꿈이라기보다는 취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 시작했다. 대학교 방송국에서 근무하며 라디오 대본을 쓰고 방송 대사와 각본을 쓰고, 대기업 채용 공고가 뜨면 서류를 쓰고 또 쓰고, 끊임없는 작고가 시작되었다. 수년간 무언가를 써 내려간 시간과는 반비례하게도, 나는 지금껏 상상하고 바라던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


그냥 한결 같이 쓰는 인간이었다.

아주 일관성 있게 각양각색의 꿈을 써 내려가는 인간. 긴 세월을 그래도 어렴풋이 나마 희망찬 “꿈” 위해 쓰기를 했다면 퇴색된 꿈도 무엇도 아닌 밥벌이로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즈음 내 꿈은 Inspiration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어느 회사에 구성원이 되고서부터는 모든 개인은 Inspiration을 가져야 했다. 우러나오는 그 꿈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individual development plan의 첫 줄을 장식해야 했다. 그럴듯한 새로운 꿈과 마음 둘 곳 없이 살아내던 직장인은 꿈 대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2021년 에세이를 쓰기로 한 것. 큰 의미는 없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던 월간 에세이는 차곡차곡 쌓여 1년이 흘렀고, 꿈을 위해 쓰고 또 쓰던 인간은 살기 위해 쓰는 인간이 되었다. 희망을 품지 않고 쓰는 글이기에, 고뇌하는 만큼, 아픈 만큼 쓸 수 있었다.

꿈은 매번 다른 표정으로 내 앞에 나타났지만, 결국 남은 건 내가 써온 것들이다. 이력서, 시나리오, 대본, 일기… 어떤 모양이든 그것들이 이어져 꿈을 쓰는 인간 하나가 되었다.

어쩌면 꿈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동안 수없이 다시 쓰이고 정의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마치 나의 꿈 리스트 같지만 루이지애나 박물관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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