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마스테 Jun 23. 2020

 재미있는 지옥, 재미없는 천국


불필요한 잎들은 거름으로


각종 해지할 것들 정리하는 것은 뉴질랜드로 떠나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휴대전화, 정수기, 케이블 TV, 인터넷 등 각종 해지 위약금. 내 삶에 들러붙어 있었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정리하는데 이런 의무사항들이 많았다니. 게다가 각종 할부금까지 떠안아야 했다. 물건을 위해서 살았나?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게 꼭 필요하고 좋은 것만 남기고 싶었다. 자신이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발견하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고 싶다. 인간은 끝없이 소유하고 자연을 파괴 하지만 나무(자연)는 불필요한 잎들은 다 떨어뜨려 그 나뭇잎은 썩지 않고 거름이 된다. 우리는 나도 파괴하고 남도 파괴하는 소비적인 삶을 산다. 정리하고 나서 꼭 필요한 책, 꼭 필요한 옷과 간소한 짐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시간, 에너지, 사람 그리고 공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내 삶에 붙어있던 군더더기들을 툭. 툭. 털어내고 떠나기 전 새로운 기대와 설렘을 걸어본다. 



도착 그리고 난관


아이들과 뉴질랜드 북섬 해밀턴에서 지냈다.  1년 동안 남편과는 떨어져서 지냈다. 도착했을 당시 아이들은 한국 학년으로 초등 2학년, 초등 3학년이었다. 아이들과 해외에 나가서 살게 되자 모든 것들이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고 불편했다. 안정적이고 안착했던 나의 일상은 설렘과 흥분 속에 새로운 표류를 맞았다.  새롭고 낯선 시간을 통해 삶의 힌트와 씨앗을 얻었다.  


많은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서 위험천만한 역주행을 경험했다. 고속도로에서 새로 구입한 지 며칠 안 되는 Nissan 차가 고장 나서 죽을 고비를 넘은 적도 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찔한 경험이다. 딸아이는 머릿니가 생기고 아들은 벼룩에 물려 심하게 고생을 했다. 이제는 추억이다. 유학원을 통해서 뉴질랜드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동차 보험을 드는 것, WOF(warrant of fitness)라는 자동차 정기 검사를 하는 것, 은행계좌를 만드는 것, 병원에 가는 것, 가구 조립하는 것, 아이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 심지어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것 까지 전부 모두 생소했다. 두 명의 아이들 학교를 픽업을 해줘야 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손목이 아팠다.







걷는 존재


주말마다 온천, 해변, 둘레길 등 가까운 곳이라도 떠나는 것은 일상이었다. 산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연 속 조용한 트래킹을 즐겼다는 게 큰 변화중 하나였다.  두 발만 있으면 어디든지 갔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고 한다. 걷는다고 내 인생이 뭐 크게 달라질까? 


 하정우는 <걷는 사람>을 통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41p)




여행, 여행


여행은 큰 추억으로 남았다. 남편이 휴가를 내고 캠퍼밴을 빌려 북섬과 남섬을 여행을 한 것은 큰 경험이었다. 뉴질랜드는 캠퍼밴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홀리데이파크가 곳곳마다 있고 전문 렌트업체들이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캠퍼밴 여행을 하기에 조건이 아주 잘 갖춰져 있었다. 여행객들의 천국이었다. 캠퍼밴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호사스러운 경치는 덤이다.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아 가다 보면 매번 STOP을 외쳤다. 다양한 형태로 여행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밴을 빌려서 몇 개월씩 여행하는 젊은 여행객들이 눈에 띄었다. 남섬에서 밴을 개조해서 여행하는 호주 커플과 여행지에서 우연히 계속 만났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밴 여행이 어떠냐'는 물음에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었고 특히 물건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들은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면서 재사용과 재활용을 한다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구나.


<가끔 여행하고 매일 이사합니다>의 하지희 작가는 밴 라이프를 통해서 어떤 삶의 방식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조금 더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나는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 여기는 게 당연하게 느끼며 살아왔다. 남들보다 뒤처지거나 다르면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해왔었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뉴질랜드는 ‘여성 인권 문제’ ‘사회적 소수자, 약자 보호 문제’ ‘미투 운동’등 우리나라가 앓고 있는 사회갈등을 먼저 경험한 나라다. 내가 관심 있게 본 것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장애인들이 많이 띄었다. 장애 1명당 보조교사가 늘 함께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장애우와 어울렸고 다름을 인정했다. 뉴질랜드에는 유독 장애인이 많은 걸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 내 아이만 잘 살면 되는 거 아냐?'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나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내가 알고 있는 학부모 B는 아파서 직장을 다니지 못했다. 부모 둘 다 직업이 없어도 ‘Benefit’이라는 생활 보조금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S는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홀로 3명의 아이를 홀로 키워야 했다. 아이들에게 각종 ‘Benefit’이 매주 나오고 친구에게는 ‘Widow’s Benefit‘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생활은 가능한 사회 안전망이 마련되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정말 잘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모난 돌들의 대화가 가능한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다.'라는 <정희진처럼 읽기>의 정희진 님의 말을 내 것으로 삼아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고 작은 ‘관심’을 갖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변하면 가정이 변하고 사회가 변한다는 믿음은 변치 않는다.  타인을 통해서 내가 낯설어지고 낯선 나와 마주 보게 되었다. 사람, 생활방식에 대한 생각이 죄다 뒤집어진 귀중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현지에서 20년을 산 D언니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뉴질랜드는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