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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n 23. 2020

내 인생의 책 절반. 고속도로에서 찢기고 싶지 않았다

뉴질랜드 고속도로 한복판. 차가 멈추었다


중고차 구입


뉴질드에 도착해서 며칠 지나자 차가 없으니 많이 불편했다.  처음 도착한 후 일주일 뒤에 남편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당장 필요한 것들을 처리했다. 집은 이미 렌트를 해 놓은 상태였고 은행계좌 만들고 휴대폰 개통하고 중고차구입했다. 중고차를 구입 한 곳은 지금 생각해도 찜찜한 곳이었다. 세련된 자동차 중고매장들을 뒤로하고 차를 산 매장은 남루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가격도 적절해서 구입한 차는 도요타 아벤시스였다. 며칠 후 아이들이 어학원에 간 사이 남편과 나는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인 오클랜드로 향했다.  표지판이 익숙하지 않은 것보다는 우리나라와 운전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 낯설었다. 남편은 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쥔 채 긴장하며 오클랜드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해밀턴에서 오클랜드로 가는 고속도로. 약 사십 분 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털털 털털 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지?"

"응. 점점 크게 나는 것 같아"

운전하는 내내 너무 불안했다. 멈추지 않았다. 그 소리가.  

그러더니 '텅'하는 큰 소리가 났다.

"어떻게 해?"

"갓길에 세워볼게"





죽을 수도 있었네


조심조심 갓길에 겨우 세웠다. 등골이 오싹했다. 일단 남편은 트렁크와 보닛을 세우고 천천히 차를 살펴봤다. 앞바퀴에 있어야 할 볼트가 네 개나 없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런 경우는 차가 균형을 잃어서 전복될 수 있다고 한다. 나랑 남편이랑 죽을 수도 있었던 거네. 남의 나라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고속도로에서 차가 균형을 잃어서 뒤집어지고 있는 상상을 하니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뒷바퀴는 다섯 개의 볼트가 멀쩡하니 버티고 있었다.  뭐지? 이런 차를 팔았다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어디다가 어떻게 뭐라고 연락을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집 렌트와 중고차 구입을 도와주신 지인 분께 연락했다. 현지 사정을 알고 있는 지인은 차를 구매한 지 일주일도 안되었기 때문에 보험회사에 전화하는 것보다는 구매한 중고차 회사에다 연락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소비자 보호법에 의해 구매한 지 일주일이 넘지 않았으니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안전에 관련되어 큰 결함이 있는 차량을 판 중고차 매매회사는 License를 잃어버릴 수 있는 중대한 상황이라고 들었다. 중고차 매매회사, 차량 정비업체, AA <Automobile Assciation>까지 다 문제가 될 수 있다니.   나랑 남편은 죽을 수도 있었네.




느려도 느려 터진 시스템


지인분은 감사하게 한걸음에 달려와 주셨다. 보험 회사보다는 차량 판매 업체에게 미리 전화를 해 놓은 상태였다. 구글 지도 맵으로 당시 Pokeno 어디 즈음인지 위치도 알려드렸다. WOF는 Warrant of Fitness라고 뉴질랜드 자동차 안전점검을 가리키는 말이다. WOF도 8 개월 전에 점검을 다 마쳤다니 이건 뭔가 구려도 한참 구렸다. 고속도로에서 기다렸다. 몇 시간을. 구입한 회사에서 레커차가 올 때까지. 짜증이 밀려오는 순간순간을 계속 억눌렀다. 한국에 있었으면 쌩하고 달려왔을 그 랙카 차. 뉴질랜드에서는 느려도 너무 느려 터졌다. 고속도로 갓길 한복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묵묵하게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여름이라 날은 더웠고 지쳐만 갔다.





여기서 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갑자기 스위치가 내려간 듯 앞은 캄캄했다. 청춘의 무지의 시절도 눈앞에서 순삭 지나갔고 아이들 꼬물꼬물 아기 때 모습도 눈에 스쳤다. 나는 특별한 꿈도 없고 그럭저럭 삶을 살았지만 이대로 안개처럼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삶의 길이보다 밀도가 중요하다고는 한다. 그래도 내 인생이라는 책은 아직 절반 즈음에 있을 텐데 여기서 찢기고 싶지 않았다. <뉴질랜드 포케노에서 사십 대 김 모 씨 부부>. 사고가 나면 뉴스에서 이렇게 방송이 되는 거구나 싶었다. 여기서 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암흑의 시간을 통과했다. 우리나라의 랙카 차를 상상했지만 너무나 초라한 운반차 비슷한 게 왔다.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중국 사장. 판매할 수 없는 차를 팔아놓고 몇 시간을 기다리게 만든 그. 차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그의 등을 보았다. 발로 힘껏 차고 싶은 심정을 억눌렀다.




안전한 차를 탈 수만 있다면


다음날, 당연히 Pay back을 요구했지만 중고차 판매 사장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다른 차로 교환할 것을 부탁했다. 다시 은행 가서 차량보험을 취소하고 명의 변경을 했다. 여권, 국제 운전면허증, Registration 서류를 챙겨서 명의 변경을 하러 가는 수고스러움 쯤이야. 안전한 차를 탈 수만 있다면. 그렇게 새 차로 바꿨다.



보너스 같은 생이 얻어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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