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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Nov 09. 2020

우리에게 가끔 잃음이 찾아올 때

비엔나 총격 테러 - 일상의 부재가 내게 알려준 것


11월 3일, 오늘부터 비엔나는 2차 코로나 락다운에 들어갑니다.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밖에 돌아다닐 수 없으며, 모든 식당과 카페는 영업을 중단해야 합니다.


오스트리아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같은 시기에 교환학생을 굳이 왜 가냐'라고 묻거나 '이런 시기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 안타깝다'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나는 왜 하필 이 시기에 외국에 나가게 된 걸까, 하고요.


철없는 생각이지만,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교환학생의 특권이라고 불리는 주변 국가 여행도 어렵게 되었고, 외국 친구들과 마음 편히 교류할 수도 없었거든요. 예술의 도시 비엔나를 온전히 누리고 싶었지만 박물관을 갈 때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어느 식당이나 카페에 가더라도 추위 따위는 무시하고 야외테이블에 앉아 오들오들 떨며 식사하는 것이 차라리 편했습니다. 이쯤 되니, '코로나만 아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겠죠.




이 생각은, 락다운의 바로 전날 밤 비엔나의 어느 곳에서 울렸던 총성을 시작으로 사라졌습니다. 급하게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어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현지인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지금 비엔나에 총격테러가 일어났으니 집 밖에 나오지 말라고요. 아직 용의자들이 잡히지 않았다는 말에 적잖이 공포스러웠습니다. 당장 집에 먹을 것이 있는지부터 확인하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장을 봐놨기 때문에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을 듯했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과 동시에 '내가 만일 밖에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할로윈 때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오페라 극장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게 꿈만 같았어요. 테러 이후 운동, 약속, 수업을 비롯한 모든 바깥활동은 당연히 취소되었고, 집 안에 있는데도 왠지 숨을 죽여야 할 것 같을 정도였으니 간단한 걸 사러 문 밖에 나가는 것조차 용기가 나지 않았죠. 매 초마다 조여 오는 두려움 없이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바깥공기를 맡을 수 있던 때가 그리웠습니다. 평화로움, 안전함은 늘상 우리 곁에 있는 것도 아니며, 대가 없이 그냥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키기 위해서 많은 애를 써야 했던 것이었어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은 너무도 많이 통용되어 이제는 다소 진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는 익숙함에 속을 때가 많기에, 이 말은 종종 또 한 번 속아있던 우리의 무던함을 깨우곤 합니다. 코로나 따위가 없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던 일상. 테러의 위협이 없어 먹고 싶은 게 생길 때 얼마든지 장을 보러 나갈 수 있는, 기분전환으로 동네를 한 바퀴 휘익 산책할 수 있는 안전한 일상. 


한 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아진 지금, 어쩌면 이미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것들을 생각해봅니다. 마시고 있는 커피,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전기, 비엔나의 깨끗한 공기처럼 늘 그렇듯 당연히 내 옆에 있는 것들이요. 고작 마스크에 투덜댔던 과거처럼 잃었다는 사실에 분통해하기보다는, 지금 누리고 있는 그리고 지켜야 마땅한 수많은 것들에는 무엇이 있나 밤새도록 세어봐야겠어요.




우리에게는 필연적으로 가끔 '잃음'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소소하게는 매일 타던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거나 정전이 됐을 때, 크게는 건강했던 몸이 더 이상 그렇지 않거나 소중한 존재가 떠나갔을 때 느끼곤 하죠. 코로나가 지나가고 테러 사건의 충격이 잊힐 즈음이면, 모든 게 평화롭다고 느껴지는 시간도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어떠한 종류의 '잃음'이 찾아올 거예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잃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꼭 빼앗아만 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잃는다는 것은 대개 슬프고, 고통스럽고, 참담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잃음'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으니까요. 제가 코로나 때문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덕분에 비엔나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처럼요. 비엔나 사람들은 희생자들이 쓰러져간 자리에 꽃을 놓고 촛불을 들어 그들을 추모하며, 결코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서로의 손을 더욱 꽉 잡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이게 우리가 슬프고도 안타까운 '잃음' 위에서 상실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2020년 11월 2일 비엔나 총격 테러 사건의 모든 희생자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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