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어풍차 Oct 29. 2020

인연은 함께라는 무늬를 만들고

휴식을 즐기는 시간


 어떤 장소를 찾아 누군가를 따라 그대로 해보는 것이 이렇게 멋진 일인 줄 몰랐다. 어쩌면 누구를 따라 한다는 자체가 조금은 융통성이 없고 낯간지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도에 점점이 박힌 한 곳을 찾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가는 내내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가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3시간을 걸쳐 달려온 그곳은 가구 수가 몇 안 되는 아담한 동네였다. 좁은 골목을 따라 작은 어망과 부표들이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있고, 주홍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지붕은 생각보다 낮았다.


 우리는 바닷가와 마주한 작은 공터에 차를 세웠다. 짭조름한 갯냄새에 남편이 마치 처음 맡는다는 듯 눈을 감고 코를 벌름거린다. 내가 어깨를 툭 치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씩 웃는다. 우리는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탤런트가 했던 것처럼 일반 가정집 같이 생긴 카페로 갔다. 빵과 커피를 피크닉 바구니에 담아 동해안에서 가장 작은 ‘가진’ 해변으로 향했다. 사각거리는 모래소리를 들으며 걷는 동안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예전에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를 보면 연인들이 사랑하는 장면에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푸른 잔디 위로 풀 파도가 언덕배기를 타고 살짝 내려온 곳에 하얀 천 같은 돗자리를 깔고 청춘 남녀가 앉아 있다. 피크닉 바구니를 펼쳐 놓고 커피를 마시며 여자가 살포시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한없이 높은 하늘엔 하얀 구름이 떠 있고 둘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가벼운 눈 맞춤이 오고 간다. 그 순간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래서인지 나의 피크닉에는 이런 환상이 늘 있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 자그마한 파라솔을 꽂고 돗자리를 깔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 나란히 길게 누웠다. 햇볕에 알맞게 데워진 모래가 기분 좋게 등에 와 닿는다. 남편의 스마트폰에서는 김정민의 ‘바닷가에서’와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 연이어 흘러나온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어울려 듣는 노랫소리는 그 어디서 들었던 노래보다 좋았다.


 주변에는 우리처럼 피크닉 바구니를 옆에 두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연인과 가족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우리와 가까운 곳 빨간 파라솔 밑에 시선이 머문다. 아마도 모녀 사이인 듯한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까르르 웃기도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가슴이 훅하고 뜨거워지면서 어머니가 떠올랐다. 부러움이 그들의 모습 언저리에 한참을 머문다.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지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동안 손잡고 나란히 걸으며 시장 구경은 물론이거니와 여행을 가 본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서울에서 학교와 직장생활을 하느라 어머니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생활환경 탓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나셨다.


 아스라한 기억 속에 그나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여행이 어린 시절 소풍이다. 그 날은 여느 아침과 달리 부산했다. 아버지는 커다란 무쇠 솥에 햇밤을 넣고 휘휘 젓으며 볶으셨는데 시간이 흐르자 토독 토독 거리며 고소한 냄새가 났다.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부지런히 단무지와 시금치를 넣고 김밥을 말고 계셨다. 그날 우리는 준비해 간 음식을 일림산 어느 중턱에 앉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늘 일에 치여 살던 어머니는 그 날 장롱에서 최고로 좋은 옷을 꺼내 입고 오셨던 기억이 난다.


 누구든 이런 장소에 오면 남의 시간에, 삶의 무게에 흔들렸던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풍경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상대의 눈빛 하나에도 가슴이 떨린 연인들도 잠시 감정을 파도에 맡긴 채 피크닉이 주는 편안함에 마음을 누인다. 지평선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던 구름이 물러가며 누군가 띄엄띄엄 찢어 놓은 듯한 구름 사이로 신성한 빛이 내린다. 잔에 담긴 커피 속으로 바다향이 잦아들 즈음 묘한 아련함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오래도록 걸어왔던 시간만큼 서로의 어깨에 기대 왔을 지금,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넘치도록 좋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우리 부부처럼 인연이라는 물에 휩쓸려 함께라는 무늬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이전 14화 그림일까 금반지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