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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Dec 09. 2020

그림일까 금반지일까

집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각종 언론에서 수도권  마지막 분양이며  교통이 편리한 역세권이라 떠들썩하게 광고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평소 가깝게 지내고 있는 동생이 그곳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언니, 아이들 방에는 어떤 커튼이 좋을까, 꽃무늬 아니면 만화영화 캐릭터, 으음! 거실벽에는 이 그림이 어때?

"이야! 한참 좋을 때다. 여보세요. 동생님, 아직 입주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자기 취향에 맞게 고르세요.."

한껏 들뜬 그녀의 모습에서 처음 집을 장만했을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집을 마련한 것은 결혼하고 8년 만에 일이었다.  내 집이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고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보며 집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 아닌 고민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입주를 하고 나니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저기서 생각지 않았던 돈이 많이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대로 식탁과 소파만 들여놓고 다른 것은 살면서 하나하나 장만하기로 했다. 입주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윗집 여자가 차 한잔 마시러  오라며  초대를 했다.



그런데 그 집 현관을 들어간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아닌 강남의 어느 고급 아파트에 온듯한 착각에 빠졌다. 같은 아파트라도 꾸미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차를 마시는 내내  단연 화제는 그 집 인테리어에 관한 것이었다. 고급스러운 소파와 식탁 그리고 주인의 감각이 돋보이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거실 한편에 걸려 있는 그림이었다. 화사하면서도 고고하고 고고하면서 기품이 있는 작가를 알 수 없는 그림이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 집 거실을 보니 같은 아파트지만  윗집과는 너무 차이가 나고 썰렁해  보였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형편이 따라 주지 않으니 처음 계획한 대로 천천히 하나씩 장만해 공간을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마트를 갔다 오는데  길가에 그림들이 아파트 담장을 끼고 길게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은 길가에서 그림을 파는 상인들이  볼 수 없지만 1990년~2000년대에는 새로 입주한 아파트 근처에 그런 상인들이  많았다. 그림들은 주로 시골 풍경을 그린 그림이  많았으며 간혹 정물화와 해바라기 그림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진열된 그림 중간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가격을 보니 만만치 않았다. 하는 수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 나는 그 그림이 눈에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장롱 위 서랍에 소중히 숨겨 둔 금반지를 꺼냈다. 아이들 백일잔치와 돌잔치 때 받았던 금반지는 물론 다른 반지들은 모두 팔아 아파트 분양대금을 마련하는데 썼다. 그러나  반지는 결혼기념일에 남편서로 주고받은 미 있는 반지로 그것마저  팔아버리고 나면  내가 서운할 것이라면 남편이 남겨 둔 것이다.


망설고 또 망설였다. 그러나 다른 것은 천천히 마련하더라도 휑하니 비어 있는 거실 한쪽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 한 점은 걸고 싶었다. 남편이  이런 나를 보면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었다고 핀잔을 줄 것이 뻔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음날 오후 거실 한쪽에 유화 한 점이 걸렸다. 허전했던 거실 벽에 노란 가을이 출렁댄다. 간혹 아름다운 비파 소리도  들리고 은은한 모과 향기도 풍기는 듯하다.


"어어, 그림이네. 어디서 난 거야. 선물 받았어?"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어리둥절해하면 묻는다.

"아아 니, 반지 팔아서...."

"내 참, 여자들 속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그냥 눈 딱 감고 안 산다고 그러더니 오늘 기어이 샀어.


남편은 여자들의 속마음이 어쩔 때는 마음이 훤히 보이는 바깥이었다가 다시 깜깜한 터널이고  다시 보일만 하면 터널로 숨어 버리는 강원도 어디쯤 가다 보면 연이어 나오는 터널이라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왜, 하필이면 터널 하고 비교를 해. 고상하고 좋은 곳도 많은데. 그리고 요즘 터널은 밝거든."

남편은 내 반론에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 그림은 우리 집 거실 한쪽 벽을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다.


" 황금색으로 그려진 그림이 집안에 걸려 있으면 부자가 된다고 하던데 알고 산 거야."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만 나는 그런 속설이 있는지도 몰랐을뿐더러 그림은 순전히 내 느낌이 이끈 대로 산 것이다. 그리고  내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그림이 낡아  보이거나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그림에는 우리 가족의 봄도 있고 겨울도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날  설레며  남편과 주고받았던 반지도 있고 두근거리며 그림을 마주하던 그때의 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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