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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Jan 27. 2021

돌아온 방랑자

-그 남자가 떠난 여행 이야기-

매주 수요일,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제법 큰 시장이 열린다. 아파트 입구 쪽에는 젊은 엄마들이 줄을 서서 사야 하는 치즈 돈가스와 등심 돈가스를 파는 가게가 있고 조금 더 위로 올라오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과 떡볶이를 파는 분식집이 있다. 그리고 분식집을 지나 조금 더 위로 올라오면 야채, 과일, 생선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파는 곳이 일렬로  즐비하게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잘 가는 곳은 의좋은 삼 형제가 운영하는 야채 가게다.  그곳은 좋은 물건은 기본이요, 삼 형제가 싹싹하고 친절해 늘 만 원이었다. 형이 손님들 물건값을 계산을 하면 동생들은 물건을 정리하거나 배달하는 일을 맡았다. 항상 웃으며 서로  도와가며 일을 하는 형제들을 보면, 이제 막 신혼살림을 차린 동생을 생각하며 자신의 볏단을 동생 낟가리에 가져다 쌓고, 동생은 식구가 많은 형님을 생각하며 자신의 볏단을 형님에게 낟가리에 서로 쌓았다는 "의좋은 형제"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산골짜기마다 붉은 낙엽들이 늦가을 정취를 뽐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아파트 단지에서는 어김없이 시장이 열렸다. 그런데 그날 시장은 특별했다. 김장철을 맞아 김장시장이 열린 것이다.  장터 입구에 들어서자 새우젓과 멸치젓 냄새가 뒤엉켜 묘한 냄새를 풍겼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시다 간을 보라며 쭉 찢어 입에 넣어 주던 김치에서 나던 그리운 냄새다. 

(수요일마다 서는 시장)

야채가게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타닥타닥 장작불이 불티를 날리며 타고  있었고 커다란 트럭에는 강원도에서 올라온 배추와  허연 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골라 골라 맛있는 강원도 배추와 무가 왔어요."

야채가게 사장님은 손뼉을 치며 열심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야채가게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쪽에서 언제 배달해 줄 거냐며 소리 지르고 있었고, 한쪽에서 왜 이렇게 계산이 늦느냐며 아우성이었다. 삼 형제가 손을 맞추며  착착 진행되던 어떤 질서가 무너져 있었다. 가게 안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알고 보니 삼 형제 중 배달 일을 맡은 막냇동생이 안 보였다.


"사장님! 막냇동생이 안 보이네요. 어디 아파요."

손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 자식 병나서 집 나갔어요. 가을이면 늘 아파 방황을 해요. 에이그, 나도 몰라. 그놈의 사랑이 뭔지.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 떠났어요."


형은 담배를 꺼내 피워 물고는 먼 산을 바라본다. 휑한 가을바람이 그 옆에 잠시 머물더니 담배연기를 몰고 사라진다. 그 사라진 담배 연기 사이로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손님들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던 그 청년의 아픈 가을이 떠올랐다. 


가을이 가고 몇 번의 눈이 내리고 또다시 장이 섰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야채가게에 모여 아직 돌아오지 않은 동생의 안부를 물으며 걱정을 했다.


" 그동안 잘 계셨지요? 오늘은 취나물이 향도 많고 물건이 좋네요."


3개월이 지난 어느 수요 장, 그가 핼쑥한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한다. 사람들은 그의 손을 잡고 잘 돌아왔다며 반가워한다.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하더니 환하게 웃는다. 주인을 잃고 힘없이 야채 가게 구석에 멀뚱히 서있던 오토바이가 반가워하며 그를 부르는 듯하다.


"부르릉, 부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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