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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Feb 15. 2021

철길 위에서 만난 찌질한 내 인생

-우연한 장소에서 나를 마주하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후 집에서 가까운 경춘선 숲길로 산책을 나섰다. 수은주를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했던 동장군은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듯 날씨는 완연한 봄이다. 따사로운 햇볕이 등 뒤를 감싸더니 점차 그 영역을 넓혀 기분 좋게 온몸을 감싼다. 코로나로 인해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지 못해 속상했던 마음이 포근한 봄 속에서 부드럽게 유영을 한다. 그러자 느긋하게 주위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천변에는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고 청둥오리 부부는 꽁무니를 하늘로 쳐들고 먹이 사냥하기에 바쁘다.


"나그네 외투를 벗긴 것은 바람이게, 해님이게."

남편이 두꺼운 겉옷을  벗으며 내게 묻는다.


"다 아는 사실을 무슨 의미 묻는 거야, 생뚱맞게. 당신 지금 겉옷 벗었잖아. 그러니까 해님이 이겼네." 멋쩍은 듯 남편이 나를 보며 씩 웃는다.

남편의 실없는 농담을 뒤로하고 묵동천을 벗어나 경춘선 숲길로 들어서자, 길게 뻗은 철로와 화랑대 폐역이 보인다. 이 역은 예전에 서울여대생들이 강촌이나 대성리 일대로 MT를 갈 때 이용했던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 주변에는 금방이라도 기적 소리를 울리면 철로를 따라 달릴 듯 놓여 있는 증기기관차와 협궤열차가 보인다. 그 주위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띄엄띄엄 의자에 앉아 봄 햇빛을 즐기고 있다. 역사를 조금 벗어나자 햇살이 길게 누운 철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철길 왼쪽에는 문정 왕후가 잠들어 있는 태릉과 명종 임금 부부가 잠들어 있는 강릉이, 오른쪽에는 육군사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의 목표는 경춘선 숲길 끝까지 갔다 오는 것이다. 집에서 그곳까지는 만 오천보가 조금 못되지만 나에게는 만만찮은 거리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 천천히 쉬엄쉬엄 걸으며 도전해 보기로 했다. 우리들 앞에는 젊은 부부가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걸으며 연신 사진을 찍는다.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철길 위에 서서 비틀거리며 걷다 이내 싫증이 났는지 돌멩이로 철길을 탕탕 두드린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 섰다. "탕탕" 또다시 들리는 소리가 이번에는 찌찔한 나의 옛날 모습을 소환했다.


"고모, 엄마 언제 와."

철길에서 서서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가 돌멩이로 철길을 두드리며 내게 물었다.


"응, 오늘은 말고 열 밤만 더 자면 올 거야. 오늘은 그냥 가자."

그 당시 오빠는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조카를 시골 부모님 집에 맡겼다. 그런데 금방 좋아질 거라던 오빠의 경제사정은 1년이 가고 또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나이가 어린 조카는 날마다 엄마를 기다리며 그날도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겨우 달래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저녁 무렵이었다. 그런 조카를 늘 안타까워하며 엄마는 무엇이든지 다 해 주려고 노력했고 우리 집 모든 주파수는 조카에게 맞춰져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고 가족들 모두 조카만 감싸는 모습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미술 준비물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해 엄마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조카도 미술 준비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돈이 없다며 조카에게만 돈을 주고 나는 그냥 가라고 했다. 그날 나는 마루에 주저앉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겠다며 엉엉 울며 돈을 주기 전에는 학교를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조카가 슬며시 돈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머쓱해진 나는 조카와 함께 학교로 향했고, 가는 내내 "그 돈 조카한테 꼭 줘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고모도 아니고 내 딸도 아니야." 하시던 엄마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학교로 가는 동안 갈등하던 나는 중학교와 초등학교로 가는 갈림길에서 조카에게 돈을 던져 주었다. 그랬더니 조카도 그 돈을 받지 않고 다시 내게 던져 주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하다가 나는 돈을 땅바닥에 내버려 두고 학교로 그냥 가버렸고 당연히 조카가 그 돈을 가지고 갔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빠듯한 살림에 엄마가 주었던 그 돈은 조카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쓰이지 못했다. 탁구공처럼 조카와 나 사이를 오가고 다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돈은 어느 마음씨 좋은 사람의 몫이 되었고, 그것은 나의 찌질한 행동의 대가였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러 조카는 어엿한 중년의 사업가가 되었지만,  그  일은 두고두고 내 가슴에 남아 나를 부끄럽게 했다.

"탕탕 탕탕"

아까와는 달리 조금 더 묵직한 소리가 나의 상념을 깨운다.


" 당신도 한번 해볼래. 옛날에 철도를 정비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철도를 두들겨 소리를 들어 보며 상태를 점검하기도 했거든."

어린 시절 기찻길 근처에서 살았다는 남편은 철도에 대한 추억이 많다.

'00아, 지금 너, 찌질하 굴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거지.'


옛날 사람들이 철로를 두드리며 점검하듯 나를 점검한다.


"탕탕탕, 탕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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