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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Dec 01. 2020

간직해야 할 슬픈 크리스마스

강화도에서 사 온 고구마를 포일에 싸서 오븐에 넣고 구운다. 온  집안이 군고구마 냄새로 가득하다. 고구마 하나를 꺼내 살살 벗기니 노란 속살에 꿀이 흥건히 배어 있다. 한 입 베어 물자 입 안에 달착지근한 맛이 부드럽게 감긴다. 해마다 어머니가 보내 주셨던 고구마도 노란 속살에서 꿀이 흘렀다.


 "올해는 고구마가  풍년이다. 많이 보내 줄 테니 아끼지 말고 먹어라." 하셨던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립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거리에는 캐럴 송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고 화려한  장식을 한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무수히 많은 조명들이 반짝였다. 사람들은 하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기대했지만 눈은 내리지 않고 바람만 매서웠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르자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울려."

      (생략)


한껏 들뜬 우리 가족은 캐럴송이 들리는 거리로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러 나섰다. 대형 트리가 세워진 광장에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많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 떠들썩하게 즐기는 기분도 꽤 괜찮았다. 따끈한 붕어빵을 아이들과 호호 불며 먹기도 하고 군밤을 호주머니에 넣고 살살 굴리기도 했다.  그러면 호주머니는 금방 따뜻해져 언 손을 녹여주었다. 이 군밤 손난로는 겨울에 즐기는 나만의 낭만이다.


밤이 꽤 깊어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는데 아직 거리는 크리스마스 열기로 가득하다. 거리에  가득 찬 캐럴송을 따라  간간이 가게 앞에 서 있는 가판대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론 예쁜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시골 부모님과 한 해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보낼 연하장을 골랐다.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하나같이 아기자기하면서도 금방이라도 아기 천사가 나올 듯 몽환적이고 신비로웠다.

우리는 추위도  잊은 채, 거리 공연도 보며  떡볶이와 따끈한 어묵으로 추위를 녹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니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집에 와서도 거리에서 느낀  열기 탓인지 쉽게 잠들지 못해 TV를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 날답게 '쿼바디스'를 방영하고 있었다. 한참 몰입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에는 잘 못 들었나 하고 있는데 다시 연거푸 울렸다.  늦은 밤 걸려온 전화는 은근히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조심스럽게 받으니 뜻밖에도 큰 언니였다. 


" 막내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소리, 마음 단단히 먹고 들어야 된다." 언니의 떨린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전해졌다.

"엄마가, 엄마가  막내야, 저녁에 식사하시다 갑자기 쓰러져  운명하셨대."

믿을 수 없다며 거짓말하지 말라며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지만 언니는 말없이 흐느껴 울기만 했다.


어제 전화로 막내야, 고구마와 참깨 조금 부쳤는데  잘 받았나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 돌아가셨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잠시 누군가 내게 장난을 친 것이라고 못된 장난을 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을 하고 또 해도 엄연한 사실 앞에 나는 무너졌고 허무하게 어머니를 보냈다. 온 세상이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고 축복하는 날, 나는 어머니를 먼 나라로 보냈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크리스마스를 잊었다. 그 좋아하던 고구마도  잊었다.


그리고 보내지 못한 그 연하장에 쓰고 또 썼다.

"엄마, 사랑합니다. 당신 딸로 태어나서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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