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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Nov 29. 2020

포틀럭 파티

친구들과 보낸 또 하나의 가을

 이른 아침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그 싸늘함이, 그 알싸함이 잠들어 있는 내 세포를 깨우며 기분 좋게 다가온다. 조그마한 가방을 메고 약속 장소로 가는 내 발걸음도 새털처럼 가볍다. 거리에는 바람을 따라 은행잎들이 노란 병아리들처럼 종종걸음을 친다. 골목을 벗어나 조금 외진 곳 모퉁이에 이르러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목청껏 외쳤다.


"오늘 하루 나는 자유, 자유, 자유다."

 누군가가 듣고 나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해도 오늘만큼은 개의치 않는다. 가슴은 활짝 열려있고  마음은 넉넉하다.


 외곽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친구들과 한 약속시간보다 다소 이른 시간이다. 싸늘했던 바깥공기가 재빨리 훈훈한 전철 속으로 스며든다. 전철 안에 많은 사람들은 이제 당연하다는 듯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하지만 마스크에 가려 예전에 그 풍부했던 표정들은 찾을 수가 없다.  한쪽 의자에 마스크를 쓴 채 엄마품에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오래 시선이 머문다. 코로나로 인해 빚어진 이 현실이 언제나 끝날 런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아마도 신은 남을 현혹시키기 위해 세상에 쏟아냈던 무수히 많은 달콤한 말과 비방들을 더 이상 참을 수없어 입을 가린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실지 너무나 두렵다. 어쩌면 신은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귀에 무언가를 걸게 할지도 모르겠다.


 전철은 어느덧 청평을 지나고 있다. 오전 나절  강은 고요하기 그지없고 잔잔히 흐르는 물살 위로 햇살이 누워  물 해먹을 탄다. 오늘은 강촌에 있는 한 펜션을 빌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미루고 미뤘던 포틀럭 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다. 펜션 입구에 들어서자  맛있는 음식 냄새와 함께 벌써 왁자지껄한 이야기가 방 안에서 흘러나온다.


"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목청껏 외쳤다. 그러자 방안에 흘러나오던 이야기 소리가 뚝 그치더니 아무 대꾸도 없이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참다못한 내가 방문을 열자 와르르 친구들이 나를 덮친다. 몇 초간 우리는 서로 뒤엉켜 웃고  웃으며  뒹굴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정색을 하면 체온계를 가져와 내 이마에 들이댄다.


" 어어! 이것 봐라. 38.7도, 이것 격리 대상인데."

친구들이 화들짝 놀라며 어디 어디 한다. 체온을 쟀던 친구가 까르르 웃으며 달아난다. 그제야 장난인 것을 알고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시끌벅적한 환영 인사를 끝내고 각자 가져온 음식을 꺼냈다.

어느새 야외 테이블 위엔 연어샐러드, 호밀빵으로 만든 수제 샌드위치, 새콤달콤한 오징어 초무침, 볶은 멸치가 들어간 김밥, 아이비 크래커에 치즈를 얹은 카나페 등 먹을거리로 가득하다. 몇 해 전부터 가평으로 이사해  전원생활하고 있는 친구는 특별히 따뜻한 국물과 함께 해물이 잔뜩 든 아귀찜을 준비 해왔다.


음식들 중앙에 삼각형 모형을 한 초코파이 케이크에 불이 켜지고 와인잔이 놓이자 드디어 파티가 시작됐다. 기쁨에 겨워 잔을 높이든 친구들 눈동자 속에서  따뜻한 정이 촛불처럼 일렁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달그락거리는 젓가락 소리와 들뜬 대화는 차분해지고 누군가가 틀어놓은 음악 소리만 잔잔히 흐른다.  그리고  하나 둘  노란 가을빛이 수북이 쌓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 가지만

 언덕길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 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생략)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제 막 가을로 접어든 우리, 그 끝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가을 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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