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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Jan 02. 2021

화성에서 온 카레 국

-추억이 담긴 음식 이야기-

경자년 마지막 날부터 새해로 이어지는 연휴가 시작됐다. 예년 같으면 해돋이를 보러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아쉽게 접어야 했다. 그 대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얘들아! 오늘은 무엇이든 내가  다 해줄게. 짜자잔! 엄마는 지금부터 요리사, 주문만 하세요."

요리에 젬병인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애들이 주저 없이 해물 카레요 한다. 내가 예상했던 것에서 한치에 오차도 없다. 내가 했던 많은 요리 중에 애들이 맛있다고 손에 꼽은 음식 중에 하나가 이 해물 카레 요리이다.


준비해 놓은 오징어, 새우, 조갯살을 손질하자, 딸이 도와주겠다며 곁에 와서 야채를 씻는다. 몇 가지 야채와 해물에 마늘을 듬뿍 넣고 살짝 볶아준 다음 육수를 넣고 끓이자 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야채와 어우러진 맛있는 카레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순간 맛있는 카레 냄새가 양평 언니와 있었던 일을 소환한다. 나도 모르게 히죽 웃음이 나온다. 재작년 양평에 사는 언니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잠깐 우리 집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카레를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 오늘처럼 해물과 야채가 들어간 카레를 준비해 대접했다. 그런데 언니는 차려놓은 카레를 한참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이상하게 먹을 생각을 안 했다.


"막내야! 이거 카레 맞아. 완전히 카레가 아니라. 카레 국인데. 어디 보자. 인도에서 온 카레도 아니고, 으음, 이것은 화성에서 온 정체불명의 카렌데."


언니의 말에 우리는 배를 움켜쥐고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다행히 그날 언니가 음식 못한 동생을 위해 가져온 몇 가지 음식으로 맛있게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나는 언니가 돌아간 뒤에 인터넷에서 카레를 검색해 봤다. 검색된 카레는 내가 평소 했던 카레와 국물 양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다. 그러면 여태껏 애들이나 남편이 맛있게 먹던 것이 카레가 아니고 카레 국이었단 말인가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그동안 레시피도 없이 만들었던 내 요리는 공교롭게도 국적불명의 카레 국으로 등장해 우리 집에서는 맛있다며 열렬히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으음! 진짜 맛있어. 우리 엄마가 만든 화성 해물 카레 맛은 역시 최고야. 어쩜 우리 이모는 이름까지 근사하게 지었을까."

딸아이의 말에 밥을 먹다 말고  한바탕 까르르 웃는 바람에 우리 집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가끔 남편은 어머님이 해 주신 음식 중에 돌나물을 떠올린다. 어느 해 봄날 어머님은 돌나물 물김치를 담가 먹기 위해 들에 가서 돌나물 한 바구니를 캐다 마루 두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바구니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 나오더란다. 그 모습을 본 뒤로 남편은 돌나물만 보면 그 도마뱀이 떠올라 맛있는 돌나물김치를 먹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나 역시 종종 친정엄마가 해주셨던 봄에는 새콤달콤한 냉이무침을, 초겨울에는 갓으로 담근 물김치를 어떤 의식을 치루 듯 담가 먹거나 잘하는 음식 점을 찾아가서 먹기도 한다


나와 남편이 이렇게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을 보고 어머니를 추억하듯 먼 훗날 우리 애들도 내가 해 준 이상한 카레 국을 떠올리며 나를 그리워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음식은 맛으로 즐기기도 하지만 추억으로 먹을 때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


"얘들아! 간식으로 쿠키를 만들 건데 바쁘지 않으면 나 좀 도와줄래."

오늘도 나는 오븐에 쿠키를 굽는다. 어쩌면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달나라 쿠키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부족해도 나를 늘 응원하는 가족이 곁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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