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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Nov 25. 2020

한바탕 잘 놀다 갑니다

나답게 사는 이야기

몇 해 전 모 가수가 부른 '백 세 인생'이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요즘은 뜸한 노래다. 이 노래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해학적이다.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중략)

구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중략)

구십 세에 저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텐데 또 왔냐고 전해라"

(생략)

죽음을 앞에 두고 이렇게 여유로운 민족이 어디 있을까. 아마도 도포자락 휘날리며 긴 호흡으로 시조를 읊던 선조들의 여유와 안동하회탈 춤이나 배비장전 나오는 주인공들의 걸쭉한 입담과 해학적 풍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 노래 이면에는 오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가사 안에 내포되어 있다. 오늘날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수명은 옛날에 비해 많이 늘었지만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질은 다르다. 그래서 지금은 몇 살까지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것은  나 역시 늘 고민해 오던 부분이기도 하다.



얼마 전 길을 걷다 우연히 어느 건물 외벽에 천상병의 시 '귀천' 일부가 걸려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면서 체포, 구금되어 약 6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그 과정에서 전기 고문으로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고, 그 후 영양실조로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시인은 그런 삶의 역경 속에서 고단하고 지난한 삶이었지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시를 보며 문득 나는 이 세상에서 생을 다하고 하늘로 가는 날 어떤 말을 남기고 떠날 수 있을까. 나의 마지막 순간 나의 인생을 지인들은 어떻게 얘기할까 하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뇌리를 스쳐 갔다. 그러다 이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 인생의 큰 그림은 무엇인가로 이어졌다. 그  그림을 위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알 필요가 있었다.


나는 눈물이 많고  우유부단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은 야무지게 한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며 내가 말하는 것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이 가끔 어떤 일을 부탁해 올 때 거의 들어주는 편이다. 사람들은 이런 내가 착한 줄 알지만 마음 약해서 거절 못 한 것뿐이다.


이러한 내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말보다 을 선택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말로 전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감정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글을 써서 전하면 상대방에게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고  글을 쓰는 순간 서운했던 일이나 열등감은 사라지고 힐링이 된다. 사는 동안 글쓰기는 쭉 나의 벗이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책 읽는 것이다. 책에는 한 사람의 평생이 혹은 누군가의 주옥같은 정수가 담겨 있다. 하루의 한두 시간 정도의 시간과 약간의 용돈만 있으면 다른 사람 인생의 보석을 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책을 써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


이렇게 하나씩 내가 가진 것과 가까이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게 없는 능력은 욕심이 될 수 있으니, 내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 나가며 즐기는 것이 힘이 덜  들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백세 인생이다. 50년이 넘게 남은 , 무엇을 하면 살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동안 나는 슈퍼우먼처럼 살며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하는 일이 바빠 차 안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해결할 때가 많았고  실적 때문에  밤샘 작업을 한 적도 비일비재했다.


그렇다고 가정 문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노심초사했고,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차에서 기다렸다 데려오기도 했다. 때로는 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회사 일이 끝나고 밤늦게까지  꼬박꼬박 졸면서 제사 음식을 마련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나를 위해 살고 싶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건강 또한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시간, 돈, 건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가 늘 갖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건강은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잘 놀 것이다.  노는 것도 단순히 여행을 하는 것에서  떠나  특별하게 잘 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년 소녀 가장 돕기, 친구와 고궁 관람하기, 내 책 발간하기 등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찾아 나만 버리스트를 만들고  짧은 호흡으로 할 수 있는 것과 긴 호흡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작성해  실천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밑그림을 열심히 그려 그 그림이 완성되는  날 나는 주저 없이 내 묘비명에 이렇게 쓸 것이다.


“한바탕 잘 놀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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