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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Dec 23. 2020

달려라, 달려 지름신아!

-코로나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 이야기-

코로나로 인해 연초에 계획했던 강의들이 줄줄이 취소가 됐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그 기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나는 20년 만에 백수가 됐다. 처음 한 달은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며 오랜만에 온 휴식이 마냥 즐거웠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흐르자 초원에서 뛰어놀던 사자가 우리 속에  갇힌 것처럼 집안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에만 맞춰졌던 주파수는 어떻게 할 줄 몰라 향을 잃고 삐걱대며 엉터리로 돌기 시작했고, 덩달아 나도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일하면서 틈틈이 즐겼던 아이쇼핑이 숨통을 트이게 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코로나 위험도 무릅쓰고 한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은 쇼핑을 하러 갔던 것 같다.


"자기야, 우리 호텔 가자. 호텔  이불에서 나는 풋풋한 풀냄새, 나는 그 풀 냄새가 너무 좋더라."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모 아나운서가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며  아내에게 툭 던져 시청자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대사다. 나도 그 아나운서처럼 어떤 특정한 향기들이 좋았다. 아이쇼핑을 하러 가면 온 백화점을 감싼 향기,  그 향기를 찾아 그곳으로 맨 먼저 향다. 갖가지  향기가 가득 모인 향수 코너다. 하나하나 다른 향기는 늘 매혹시키기 충분했고  나는 거기서 묘한 자유를 느꼈다


그다음은 이불이나 베개가 있는 침구 코너다. 그곳에 가면 은은한 엄마의 향기가 나는 듯해 좋았다. 어디라도 풀썩 주저앉으면 넉넉한 자리를 내어주고 따뜻하게 감싸 줄 것만 같은 착각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러나 아이쇼핑은 잠깐의 무료함은 달랠 수 있었지만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은 채우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허기져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사자처럼 마음을 꽉 채워줄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딩동, 택배요"


"야! 반건조 오징어와 칡즙이네. 오징어 진짜 맛있겠다."


"딩동, 택배요."


"이번에는 또 뭐야,  오늘은 엄마 화장품만 잔뜩이네."


아이들은 배달되는 택배 상자를 선물 상자인 양 신나서 뜯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된 택배 상자에 애들도 점차 근심스러운 듯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날이 우리 집에는 감, 굴, 신발, 옷, 사과 등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고 나는 좀 더 싸고 예쁜 것을 사고 고르는데 정성을 들였다. 


그럴 때마다 샀다는 만족감과 희열은 다른 상품을 계속해서 클릭하게 만들었고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어 행복했다.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인터넷 서핑을 하며 보냈고  어느새 나는 신중에 가장 신나는 신, 지름신이 되어  있었다.  


"달려라 달려, 지름신아,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지름신아."

지름신은 스키를 타고 설원을 누비듯 무한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몇 개 밖에 안 남아 곧 품절 임박이라는 문구가 뜨면 광속도로 클릭을  했고 맛있다는 광고에 또 클릭을 했다. 어느새 나는 그들의  마케팅 전략에, 쇼핑하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었다.


" 당신, 정말 왜 이래. 제발 정신 좀 차려. 당신 주변 좀 둘러봐. 집에다 마트 차릴 거야."

퍼뜩 정신을 차려 보니 서재 방은 온통 택배 상자로 가득했다. 몇십 년 동안  못했던 쇼핑을  다한 느낌이었다. 수북이 쌓인 택배 상자를 허무하게 바라봤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받았던 고통의 나날들이, 나의 한숨이 상자에 가득 내려앉아 있는 듯했다.


"여보, 나를 가장 나답게 했던 자리, 숨통이 확 트이게 했던 그 일자리로 나 돌아 갈래."

절규처럼 내뱉은 말은 공허하게 천정에서 웅웅 거리다 이내 사라졌다. 틀어놓은 텔레비전 화면 아래는 코로나 환자 수가 천명을 넘어섰다는 자막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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