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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Oct 30. 2020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는 시간



북한강이 손에 잡힐 듯한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본다. 강물은 이른 아침 풋풋한 햇살을 담고 고요히 흐른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살을 가르던 요트와 수상스키를 타던 어제의 그 떠들썩함은  어디에도 없다. 어이없이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부랴부랴 쫓기듯 도망쳐 왔던 유월의 그 어느 날처럼 강물은 흐르고 풍광 또한 변함이 없다. 


건강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버지는 간신히 산소 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하고 계셨다.


"아버지, 저 막내예요. 내 목소리 들려요."


산소 호흡기 너머로 가느다란 흔들림이 전해져 왔다.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듯했다. 그 후로 아버지는 경과가 좋아져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 병실은 언니들과 오빠들이 번갈아가며 지켰고, 나는 일이 바빠 면회 가는 것도 띄엄띄엄 갈 수밖에 없었다. 가끔 병문안을 가면 침대에 앉아서 우리와 이야기도 하며 과일도 드시는 것을 보아 머지않아 퇴원도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일반 병실로 옮긴 지 보름 만에 우리 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병실 한 번 지킬 걸, " 아버지와의 시간이 영원할 줄 착각한 나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밤늦게 찾아가면

 " 힘들게 뭐 하러 왔어." 하시면서도 좋아하던 아버지가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알량한 일 때문에 그것을 핑계 삼아 아버지와 함께할 얼마 남지 않는 시간들을 잃어버린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인 동시에 멍충이었다. 일처리를 느슨하게 하면 얼마든지 아버지와 함께 할 시간은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내가 도저히 용서가 안됐다. 아니 누구에게도 용서받고 싶지도 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몇 날 며칠을 잠을 못 자고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남편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이곳에 와서도 장소만 달라졌을 뿐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아침, 두드러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를 업고 아버지는 천천히 대나무 숲을 걸었다. 따스한 등에 얼굴을  묻은 채  뽀드득 거리는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가느다란 댓잎에 쌓인 눈들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풀썩 내려앉을 때마다 하얀 눈가루들이 날렸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걷던 아버지가 호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주셨다. 유난히 달고 맛있어 그 괴롭던 두드러기도 잊었던 그 날의 추억들이 수시로 소환됐다.


 그날도 새벽 2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 뭔가에 이끌린 듯 베란다로 나왔다. 은은한 달빛이 온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경이로웠다. 아마 신선이 사는 곳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강물도 갈대도 은빛 보자기에 폭 쌓여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웠다. 갑자기 위로받은 듯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가슴에 얹힌 뭔가가 퉁 하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끝까지 아버지는 이 못난 막내딸이 걱정돼 마음을 놓지 못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 저 편에서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길어 올리는 순간 잔잔한 파장이 다가와 따스하게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생각나면 가끔 이곳을 찾는다. 갈대밭이 우거진 강물을 보면 아버지와 마주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아마 그 용서는 어느 시인처럼 이 세상 소풍이 끝나고 부모님 만나러 가는 날 조용히 그 짐을 내려놓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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