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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Dec 26. 2020

어떤 부부가 즐기는 이상한 소풍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소풍 이야기-

커피포트에서 뽀글뽀글 물 끓는 소리가 난다. 보온병을 가져와 커피를 타서 피크닉 가방에 넣는다. 오늘은 수묵화처럼 봉화산 자락이 주방 창가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어제 내린 눈이 띄엄띄엄 낙엽을 덮고 있다. 겨울은 비움에 계절이라고 했던가. 살며시 고개가 저어진다. 하얀 눈이 찾아와 살포시 산을 감싸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비움에 눈이 더해지는 계절 아닌가 싶다.  

           

" 벌써 준비가 끝난 거야. 그럼 천천히  소풍 장소로 출발해 볼까?"            

쨍한 겨울 햇빛을 뚫고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도착한 곳은 날씨가 추운 탓인지 눈이 그대로 수북이 쌓여 금방이라도 엘사가 '레디고, 레디고'를 외치며 나타날 것만 같다. 남편이 캠핑용 석유난로와 담요를 들고 앞장을 선다.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봉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도 눈이 소복이 쌓였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솜이불을 밟은 듯 푹신해 '야호' 하며 소리를 질렀다.       


"으이구! 언제 철들래. 아니다, 철들면 죽는다더라 그냥 그렇게 살아."    

남편이 봉안당 석상 위와 뜰에 쌓여 있는 눈을 빗자루로 쓱쓱 쓸어 낸다. 하얀 눈가루가 햇볕에 반짝이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주변이 대충 정리가 되자 돗자리를 깐 다음 캠핑용 석유난로에 불을 켰다. 부모님께 간단한 예를 올린 뒤 준비해 간 커피를 마셨다. 뜨거운 커피에서 난 김이 찬 공기를 뚫고 하늘로 위로 오르며 커피 향과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잔째 연거푸 커피를 마시던 남편이 누구도 마셔보지 못한 천상의 커피 맛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곁에 있는 석유난로가 연신 뜨거운 열기 내뿜는다. 그 열기는 덮고 있는 담요로 스며들어 따뜻하게 감싼다.             


주위의 풍경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우리들 앞에는 높지도 작지도 않는 산과 살짝 얼어붙은 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뒤로는 동글동글한 무덤들이 산자락을 타고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무덤에 대한 괴담들이 참 많았다. 혼 불이 날아다니고 귀신이 나오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릴 때 막내 시동생이 무덤에서 놀다 그곳에서 잠이 들었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무덤이 그리 무서움 곳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도 최근에 부모님과 가까운 사람들을 먼 곳으로 보내고서야 그곳은 무서운 곳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봉안당 옆에 보호수처럼 떡 버티고 서 있던 소나무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툭하고 솔방울 하나를 떨어뜨린다. 그 위로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풍경을 바라본 순간 이보다 더 근사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이곳은 오직 우리를 위해 열려 있고 우리만이 즐길 수 있는 소풍장소이다. 봄은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그대로 즐길 수 있게 부모님이 마련해 놓은 장소이기도 하다.      

       

거기에 가장 많이 오는 손님은 물론 우리 부부다. 마음이 답답할 때도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도 어김없이 이곳으로 소풍을 온다. 그러면 부모님이 계신 이곳은 계절에 맞는 근사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반긴다.      

      

"어머니! 있잖아요, 요번에 우리 형제들끼리 모아 논 돈으로 형제간에 우애를 다지자는 의미로 금으로 기념될만한 것을 만들어 서로 지니기로 했어요. 어머니가 살아생전 늘 강조하신 것이 형제간 우애였잖아요. 늘 명심하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에 비가 밤에 야식을 먹더니 살이 2kg이나 쪘어요. 다이어트 좀 시켜야겠지요? 대책 없이 먹는 데에는 정말 답이 없어요. 어머니"     

       


오늘도 어김없이 조잘조잘 거리며 내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어머니와 아버님이 빙그레 웃으며 듣고 계신 듯하다.    

 

" 사모님! 오늘 소풍은  여기서 그만 끝내시죠"    

남편이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하늘에서는 하얀 낮달이 우리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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