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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용 Jun 08. 2023

먹는 걸로 남편한테 기분 상할 뻔했다.

먹는 걸로는 서럽게 하지 말자 좀...

2021년 6월 11일


바르셀로나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다녀오신 시부모님께서 선물로 하몽을 사다 주셨다. 


그날 오후 남편은 부엌에서 하몽을 뜯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잠시 후 와인과 함께 샌드위치를 거실로 가져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하던 일을 마친 후에 샌드위치를 얻어먹으려고 거실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 사이 접시가 비어있는 것이었다. 

"하몽... 다 먹었어?" 

자서방은 입에 빵 부스러기를 털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 서럽다... 

"어떻게 먹어보란 소리도 안 하고 혼자 그걸 다 먹냐!" 

자서방은 약 올리는 표정으로 "어떻게 같이 먹자는 말도 안 하냐!" 하며 말장난을 했고 그 모습에 나는 더 서러워져서 서재방으로 돌아갔다. 아... 화가 안 풀리네.

   



다음날 오전에 시어머니와 동네 산책을 나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하몽 맛이 어땠냐고 물으셨다. 그때 나는 설움이 폭발해 모든 일을 고자질을 했다. 내 사연을 들으신 시어머니께서는 자서방이 아주 잘못했다며 화를 내셨다. 


"내 아들 두 명 다 고등학생 때였단다. 둘 형제가 방학이라 집에서 티브이나 보고 빈둥거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날 너무 바빠서 끼니도 못 챙겼단다. 그런데 글쎄 이 녀석들이 자기들끼리만 뭘 요리해서 다 먹어치웠지 뭐니... 그걸 보고 나는 크게 화를 냈지. 어떻게 엄마가 식사도 못하고 바쁜데 도와주려는 녀석도 없고 너희들끼리만 다 먹어치울 수가 있냐고 말이야. 그랬더니 그 녀석들이 뭐라고 했는 줄 아니? 왜 도와달라고 안 했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 니들은 눈이 없냐!!" 

시어머니께서는 어느새 나보다 더 화를 내고 계셨다. 

"하몽은 더 있으니 내가 더 주마. 큰 덩어리를 사 왔기 때문에 원래도 더 주려고 했어." 

사실 하몽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거절했다. 그저 남편한테 서운했을 뿐... 




그런데 오후에 남편이 간식이라며 하몽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뭐? 하몽이 남아있다고?"

자서방이 씩 웃으며 끄덕끄덕했다. 

아... 내가 삐쳐있는걸 잘도 구경했구먼…

왜 말을 안 했냐니까 내가 혼자서 멋대로 그렇게 단정을 하더란다. 물론 내가 찾아볼 생각도 안 하긴 했지만. 

무안한데 또 제대로 말을 안 해준 남편이 원망스럽다.

시어머니께 얼른 정정 메시지를 드렸다. 

"하몽이 아직 남아있었네요. 혼자 다 먹었다고 하더니 사실은 그렇게까지 욕심쟁이 남편은 아니었어요."

"다행이구나. 그래 내 아들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아." 



남편은 하몽뿐만 아니라 작은 통에 담긴 리에뜨(Riettes)도 꺼냈다. 

이 리에뜨는 돼지고기로 만든 건데 오리나 토끼, 연어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했다. 



하몽 샌드위치 두 조각, 리에트 샌드위치 두 조각.


자기는 안 먹고 구경만 하겠다며 와인을 따라주며 웃는 남편. 


"본아페티." 

내가 먹는 걸 구경만 하던 자서방은 나에게 리예뜨가 더 맛있는지 하몽이 더 맛있는지 물었다. 

"하몽이 좀 더 맛있는 거 같아. 오래전 이걸 시댁에서 처음 먹어봤을 때는 너무 짜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맛있다. 남편 혼자 다 먹었다고 해서 화가 났을 만큼-" 

자서방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웃더니 한참이나 내 말투를 흉내 내며 나를 놀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남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먹는 걸로는 서럽게 하지 말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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