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이 되는 꿈을 가진 아이
여태껏 만난 중학생 중 상호 같은 눈빛을 본 적은 없었다. 단지 처음 보았을 뿐인데, 그토록 무시하는 말투와 눈빛을 맞닥뜨린 적은 없었다. 만약 상호를 만나기 전 상담교사가 나에게 미리 경고(?)를 하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상당히 건방집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들한테 공격적으로 말하고, 심지어 젊은 여자 선생님은 울면서 나갔어요."
'만만치 않겠구나' 큰 숨 한번 들이쉬고, 상담실 문을 열었다.
팔짱을 낀 채로 엉덩이를 소파 끝에 걸치고 탁자 밑으로 다리를 쭉 뻗고 있던 아이가 문소리가 들리자 잠깐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아이 앞 소파에 엉거주춤 앉아 아이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름이 뭐야?"
아이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툭 내뱉었다.
"이상호요"
"몇 학년이야?"
"중 2요"
얼굴에 열이 올랐다. '녀석 말이 참 짧네. 내가 너보다 나이 든 딸이 있는데. 예의를 밥 말아먹었나.. 흠.'
숨을 쉬고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근데 질문마다 심드렁한 단답이 돌아오니 질문이 더 이어지기 어려웠다. 준비한 질문이 다 떨어져 시계를 보았다. 겨우 10분이 지났다.
막막해졌다. '에휴.. 어찌 남은 35분 동안 이 녀석과 보내야 하나.'
문득 약발이 잘 먹힌다는 상담자의 솔직성이라는 무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음.. 네가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 거 불편한 거 같아서 나도 조금 불편하네. 그런데 어차피 너랑 나랑 남은 35분 동안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가능하면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혹시 대인관계, 성격, 진로, 이성교제 등 어떤 것이 관심이 있어?"
"진로요"
조금 의외였다. 이성교제나 없다 정도의 대답이 나올 거라는 예상을 비켜갔다. 호기롭게 물었다.
"그래? 뭐가 되고 싶은데?"
상호의 눈이 드디어 나를 향했다.
"조폭이요"
심장이 빨리 뛰고 마음속에서 뭔가 불끈 끓어올랐다. '이 녀석 나랑 장난 하자는 건가? 해보자는 건가? '주먹을 쥐고 녀석의 눈을 매섭게 째려봤다.
그 순간, 녀석의 쏘아보는 시선을 마주 한 순간, 퍼뜩 날카롭게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이 녀석은 나랑 그저 오늘 처음 만났을 뿐인데'
처음 만난 상호와 나 사이에는 서로를 미워할 이유도 역사도 없었다. 상호의 심드렁하고 무심한, 무례하기까지 한 태도는 분노가 확실했지만 그 분노의 방향이 상담자일 수는 없었다. 실은 내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건방진 아이는 사라졌다. 내 앞에는 그저 조폭이 되고 싶다는 상호가 존재했다. 그리고 온전히 궁금해졌다.
"흠.. 조폭..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조폭이 되고 싶은 이유가 있어?"
상담자로, 부모로, 또는 직장인으로 살면서 우리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숨겨진 그림을 찾는 것처럼 겉으로 봐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숨겨져 있는 그 무언가를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 사람은 어떠 어떠할 거야"라는 큰 그림 때문에 그 그림 속에 숨겨진 마음 속 작은 그림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상호가 조폭이 되고 싶은 이유는 평범했다. 그저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사람은 항상 검은색 세단을 타고 멋진 양복을 입은 누나의 남자 친구였다. 상호는 번듯한 차를 사서 아빠에게 맞기만 했던 엄마를 태워주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신고했던 폭력적 아빠의 경제력을 더 이상 그리워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처럼 상호도 소위 주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직업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사실 상호는 싸움대장이기 때문에 조폭이라는 직업에 대한 소질이 있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학교에서 가장 힘이 센 교사들과 싸우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교사는 가장 싸워서 이기고 싶은 사람들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빠처럼 명령하고 지시하고 질책하기 때문이었다. 동기도 적성도 맞아떨어지니 조폭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조롱하듯 조폭이 되겠다는 말을 하는 아이, 교사들과 맞짱을 뜨는 아이, 이러한 겉 그림 밑에는 상호의 숨겨진 그림이 있다. 가식 없이 조폭이라는 말을 하는 정직한 아이, 돈을 벌어 엄마를 편하게 해주고 싶은 아이, 맛있는 것을 맘껏 먹고 싶은 아이, 사고 싶은 게임을 선뜻 사고 싶은 아이,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는 어른에게는 양처럼 온순한 아이.
살면서 무수한 상호를 만났고, 여전히 만나고 있다. 상호는 때로 내담자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고, 상사이기도 하며, 부하직원이기도 하다.
혹시,
궁금해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숨겨진 그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