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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Apr 09. 2021

성격궁합 있다? 없다?

ISTJ 부모와 ENFP 아이

초등학교 6학년 철수는 상담자가 앉기도 전에 묻는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이 문제(심리검사)는 왜 푸는 거예요?"
"이 문제에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다가 동물 써도 돼요?" 
쉼이 없다. 어머니가 험악한 얼굴을 보여도 그때뿐이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버릇이 없습니다" 
거침없는 철수 옆에 안절부절 어머님이 한숨을 쉰다. 검은색 안경, 목까지 채워진 하얀 셔츠와 회색 치마, 검은색 단화의 어머니는 가지런히 묶인 머리를 연신 만진다. 
"어떤 일로 상담실에 오시게 되셨어요?" 
어머니의 미간이 잠깐 찌푸려지더니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차분한 응답이 되돌아온다.
"음… 저희 애가 문제가 많은 거 같아요.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요"


철수는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시장에 들어서면 아이는 금세 자취를 감춘다. 아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다 보면 생선가게 앞에서, 장난감 가게 앞에서 혹은 어느 가게 앞에서 사장님들과 이야기하는 철수를 발견하곤 한다. '생선이름이 무언지', '장난감은 어떻게 갖고 노는 것인지' 등등 궁금한 점을 쏟아낸다. 도통 궁금한 것을 참아 내지 못한다. 호기심을 인내하지 못하는 모습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를 보면서 철수의 질문은 끝이 없다. '엄마 저기서는 왜 저런 거야?' '저 다음은 어떻게 될까?' '저 사람들 속상하겠다 그지?' 등등. 아이는 도통 생각이란 걸 혼자 하지 못한다. 질문을 뱉기 전에 스스로 답을 찾고 나름의 결론을 가져야 할 텐데... 아이는 산만하고 피곤하다.



Carl Jung에 따르면 인간은 날 때부터 선천적인 성격 기질이 있다고 한다. 그의 이론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검사가 MBTI 검사이다. MBTI에 따르면 철수의 이상함(?)은 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자유롭고 유연한 성향 때문에 나타난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은 그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가만히 앉아서 해답을 찾는 것은 사실 어머니의 방식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어머니는 철수와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내향적이고, 감각적이며, 계획적이다. 새로운 것을 아는 것보다는 기존의 지식이나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선호하고 계획적으로 행동한다.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남에게 묻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한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과 이야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머니의 성격이 이러하니 철수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고 문제가 많다. 진짜 극과 극, 성격 궁합이 맞지 않는 철수와 어머니다. 이처럼 최악의 성격궁합이 비극이 되는 경우는, 타고난 성격성향이 다를 뿐인데, 이상한 성격의 사람으로 오해받을 때이다. 특히 그 오해가 절대 권력을 가진 부모에게서 나에게 꽂힌다면 비극은 더 절망적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 상담실에서 일하던 시절, 흔치 않은 외모를 가진 호영이 상담실을 찾아왔더랬다. 그는 말했다.
‘저는 자신감이 없어요. 공부도 못하고 목소리도 이상하고, 얼굴도 못생기고, 무엇보다 저의 내성적이 성격이 너무 싫어요.’
내향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듯해서 내향성의 긍정적인 면을 객관적으로 설득하고자 MBTI 검사를 실시했다. 역시나 내향적으로 나온 그에게 내향성의 긍정적인 점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아~ 내향형이 나쁜 것은 아니네요? 신중하고 사람들을 깊이 사귀는 좋은 점이 있군요.'라는 이야기를 내심 기대한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아... 저는 정말 내향적인 거네요. 어쩔 수가 없는 거네요."
내향적인 사람이 생각이 깊고 자기 관리를 잘해서 내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그의 절망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자신 속에 있는 ‘내향’과 관련된 모든 특성들을 다 없애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호영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은 모두 외향형이다. 어릴 때부터 그는 아버지로부터 ‘넌 계집애처럼 왜 이렇게 소심해! 니 남동생처럼 사람들한테 말도 좀 걸고. 좀 남자답게 행동해.’라는 이야기를 수 없이 들어야만 했다. 그에게 내향적인 성격은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결점이었다. 내향적인 성격은 탄생의 이유로 갖는 원죄처럼 수치스럽고 죄스러운 것이었다. 


어쩌면 철수는 미래의 호영이 될지도 모른다. 철수는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질문과 호기심이 문제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산만하다고 책망할 수 있다. 철수 어머니에 의해 철수의 거침없는 호기심이 좌절된다면, 사람들과의 소통이 억압된다면, 자유로운 행동이 통제된다면, 창조성과 직관력도 개발될 기회를 잃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세상과 만나기 어렵다. 철수의 어머니는 당신의 성격과 철수의 성격이 날 때부터 다르다는 것, 그리고 다르기에 갖는 철수의 강점을 이해하시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상담실을 나섰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이해가 쉽다. 하지만 성향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성장할 수 있다. 필자는 외향적이고 남편은 내향적이다. 남편은 화가 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자신의 화가 풀리기 전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화가 날 때 말을 걸면 화는 배가 된다. 반면 필자는 화가 나면 누군가에게 꼭 말을 해야 한다. 이때 옆에 있는 누군가가 화난 나의 모습을 보고도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그래서 더 화가 난다. 결혼 초 부부싸움 후에 찾아오는 남편의 침묵은 일종의 고문 같았다. 그러다 남편의 화를 해결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애써 이해하고 나서, 남편의 침묵이 더 이상 고문이 되지 않았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듯이 지낼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하나 낱낱이 풀어헤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나에게는, 한숨 자고 나면 잊고 아무 일도 없듯이 생활하는 행동이 옳지 않고 때로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해결책이나 생각 없이 잠 한숨 자고 나서 묻고 살아가는 묘미를 알며 가벼워진 삶의 여정을 느낀다. 


궁합은 맞추지 않아도 좋고, 애써 맞춰도 좋다. 
그래서 궁합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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