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름 Jul 30. 2020

우리는 알고 있을까?

'부모의 죽음, 살아남은 소녀'

영희는 서울 외곽 개발이 더디게 오는 도시에 사는 소녀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고 그 후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영희의 언니 미영은 영희를 돌보고 가사를 도맡았다. 그리고 돈을 벌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영희의 큰 아버지는 영희네 가족에게 돈을 주었다. 하지만 큰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밤마다 미영에게 못된 짓을 했다. 같은 방에 있던 영희는 언니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목격했다. 어느 아침, 영희는 미영이 없는 텅 빈 침대를 보게 되었다. 이제 영희에게 함께 말할 사람, 요리할 사람, 놀 사람, 그리고 함께 울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 그녀 옆에는 술에 찌든 아버지, 그리고 언제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할지 모를 큰 아버지만 남아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 영희도 집을 떠나 이모에게 갔다. 조금 괜찮아졌을 때 아버지가 영희를 찾아왔다. 아버지는 애걸했다. '돌아오렴.. 사랑한다.' 그러나 영희는  아버지에게서 나는 진한 알코올 냄새와 붉은 눈이 싫었다. '안 가고 싶어요. 여기 있을 거예요. 아버지와 살기 싫어요’.. 그 날 저녁 아버지는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장례식에서 친척들은 영희에게 말했다. ‘네가 아버지를 죽였어. 네가 아버지와 함께 갔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거야’. 그때 그녀의 나이는 고작 12살이었다.  


영희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 어린 소녀가 진 불행의 무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힘들었겠구나', '죄책감이 많았겠구나' 등등 흔한 공감 한마디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말문을 더 막히게 한 것은 그 사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앞에 선 그녀, 그녀의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밝았다. 때론 너무 큰 고통을 경험했던 사람들 중에 일종의 방어로 지나치게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영희의 밝음은 이것과 다른 차원이었다. 학교 생활을 즐거워했고 친구도 많았고 친구와 교사들로부터 긍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도대체... 그녀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설마... 그 사건을 극복했단 말인가?.. 어떻게?’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서는 영희와 같은 청소년을 '탄력적 청소년(Psychological Resiliency)'라고 명한다. 탄력적인 아이들은 어려운 환경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발달상의 문제를 보이지 않고 적응을 잘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긍정심리학에서 이들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기존의 청소년 문제에 대한 연구가 인간에 적응에 있어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는 무엇이 문제인가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관점에 대한 비판에 있다. 긍정심리학에서는 탄력적 아이들이 어떻게 어려운 환경에서 견디어 냈는지 그 비밀을 캐냄으로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희망을 갖는 것,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 낙천적인 성품 등은 탄력적인 아이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성품 들이다. 사실 이런 관점은 비단  청소년 문제를 보는 관점에 한정되기보다는 인간의 문제, 우리 자신의 문제를 보는 관점에 적용될 수 있다. 나 자신의 성격에 대해 생각할 때 문제가 무엇이며, 이 문제가 나의 성장배경에서 어떤 문제 때문에 발생했으며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나를 힘들게 했던 상황에서도 나를 지탱해주었던 힘은 무엇이며, 내 어떤 점 때문에 견디어 낼 수 있었으며 지금의 내 모습 중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중에 힘든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수할 때마다 향해지는 무시의 눈빛에서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헤어짐까지 아픔과 상처는 공기와도 같이 늘 우리와 함께 있다. 그 상처를 잘 해결했다고 믿건 안 믿건 그 상처의 시간을 지나 현재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견디어 낸 것이다. 견뎌진 것이 아니라 견디어 낸 것이다. 그 견딤의 뒤에는 희망이 있었을 수도 있고 탈출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을 수도 있고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을 수도 있다.  


불안 증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6개월 전 승진이 됨과 동시에 매일 출근 시간만 되면 화장실을 드나드는 버릇이 생겼다. 실제로 화장실에 가면 소변이 나오지도 않는데 아침마다 4-5번씩 빈뇨감을 느꼈다. 이런 증상이 생긴 후 그는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증상을 없애려고 화장실에 안 가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불안해지고 그 증상은 심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6개월 사이 그는 결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주어진 업무를 미룬 적도 없었다. ‘그런 증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결근 한번 없이 그 상황을 어떻게 견디어 내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놀랐던 것 같다. ‘저는 한 번도 그걸 견디어냈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건 견디어 낸 거예요. 당신이 증상 때문에 힘들다 해도 그 증상으로 인해 당신의 현실이 망쳐진 것은 없어요. 당신에게 어쩌면 증상은 지금 바로 당장 없애야 하는 건 아닐 수 있어요.’ 그가 증상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증상이 있더라도 남들과 똑같이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자신의 강점을 믿게 되고 난 후, 얼마 지나 그 증상도 사라졌다

 

영희가 극복할 수 있던 비밀은 '편지'였다.  

죽은 엄마에게 썼던 편지.


그녀는 엄마에게 매일매일 좋아하는 남자 친구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일, 언니의 일 … 그 모든 것을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는 언제나 그녀의 옆에서 기쁨, 즐거움 그리고 슬픔, 아픔을 함께 했다. 그렇게 그녀에게 엄마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하고 있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앉아 어머니에게 울면서 아버지가 죽음에 대해서 글을 적고 있을 때 영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가 가진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다는 간절한 믿음'과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내고 싶다는 강한 의지', 12살 어린 소녀는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알고 있을까?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영희의 편지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