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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조신 Oct 21. 2020

취미를 그만두다

M&A story

그 당시의 나의 취미는 '십자수'였다. 유명한 십자수 카페에 가입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해서 끊임없이 수를 놓는 것이다. 가끔 카페에 완성한 작품을 내놓고, 정해진 기간 내에 완성하면 선물을 받는 이벤트도 종종 있었는데 승부욕도 있었던 나는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어내곤 했다. 물론 생활이 망가지는 건 한 순간이었는데도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악착같이 해내곤 했던 것이다.


동시에 나는 도안을 모으는 취미도 있어서 몇 개로는 성도 차지 않아 모으고 모으다 보니 3천 점 가량의 십자수 도안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도안을 수집했고 해외사이트를 검색해서라도 괜찮아 보이는 작품은 전부 모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평생 방 안에 갇혀서 십자수만 해도 다 못할 양이었는데 소유욕에 불탄 나는 기회가 되는대로 십자수 도안을 수집하곤 했다. 참으로 열정적이었던 삶의 한 부분이구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외출보다는 십자수를 하며 모아둔 콘텐츠를 감상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십자수를 하다가 책상에 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와 보니 실과 바늘이 사라진 후였다.

방을 구석구석 찾고,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다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고양이가 실을 좋아한다길래 혹시라도 먹을까 봐 조심하는 편이었고, 다행히 몽고는 내 방에 잘 오지 않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바늘이 사라진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몽고도 살펴보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몽고의 목소리가 쉰소리처럼 갈라지더니 이상증세를 보였다. 동생은 새벽에 동물병원으로 몽고를 데려갔고, 진단 결과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몽고는 그날 십자수 바늘을 삼킨 것이다. 그러면서 며칠을 사료를 먹으며 생활을 하다가 속에서 탈이 난 것이다. 수술 후 그의 몸에선 녹이 슨 십자수 바늘이 나왔다고 한다. 몽고 역시 실에 대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실을 핥다가 조금씩 삼켜버려서 실과 바늘이 몸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실은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 내장에 꼬이면 위험해서 조심해야 하는 물건 중 하나이다. 그리고 평소에 오지도 않던 내 방에 왔다는 것도 변수였다.


나는 이런 결과를 만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나를 질책했고, 몽고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십자수 바늘은 뾰족한 일반 바늘과 달리 앞이 뭉툭해서 찔리지는 않는 디자인이지만, 바늘이 몽고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다행히 몽고는 집에서 며칠 잘 쉬면 회복이 될 것이고 다른 증세는 없으며 수술은 잘 되었다는 동생과의 통화를 끝낸 후 바쁘게 십자수 용품을 모두 챙겨 상자에 담았다. 십자수 실 케이스, 종류별 바늘, 새로 공수한 실, 자수틀, 작품 도안 등 그동안의 나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어마어마한 양이 나왔다. 얼마 전에 구입한 새 상품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릴 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온라인에 올려 팔기 시작했고, 팔리는 동안 상자에서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꺼내보며 이별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모으던 모든 용품을 팔고, 가지고 있던 도안 3천 점 가량도 역시 친구에게 전부 선물했다. 그녀 역시 죽을 때까지 다 못할 도안을 어떻게 했으려나....


며칠이 지나 회복한 몽고가 또다시 도도하게 집을 걸어 다녔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나의 방에 또 방문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십자수를 하지 못하게 된 사람이지만, 또다시 환경에 적응하는 삶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후 우리는 새로운 사건을 만나게 된다. 아니,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덧.

나의 취미는 십자수에서 패션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으로 옮겨 갔다.

몽고가 비즈나 구슬을 공으로 생각하여 축구놀이를 하고, 가끔 작업 책상에서 상자를 밀어 바닥을 온통 구슬 투성이로 만들어 신나게 공놀이를 하는 것을 언제까지 감당해야 할지 모르지만 입으로 삼키지는 않아서 당분간은 이 취미를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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