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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조신 Oct 21. 2020

뜻밖의 연인

M&A story

몽고가 십자수 바늘을 삼켜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어 수술을 하던 그 새벽에, 동생이 찾아간 동물병원에서는 뜻밖의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몽고의 몸에서 십자수 바늘을 확인하고 수술을 진행하던 원장 선생님이 몽고의 잘생긴 외모에 흠뻑 빠지어(그 마음 아주 이해합니다), 자신의 동물병원에 같은 종인 샴 고양이가 있으니 교배를 진행해 보겠냐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몽고는 중성화를 하기 전이었고, 친구는 물론 연인도 없었을 뿐 아니라 삶이 치열한 동네 길냥이들을 창밖으로 바라보기만 했으며, 다른 고양이를 직접 만난 경험이 없는 상태였다.

수술을 하는 불안한 상황에서의 제안은 놀라웠고, 집에 돌아와 내게 말하는 동생의 얼굴도 당황과 웃음이 뒤섞여 놀라워했다. 물론 듣고 있던 나도 같은 얼굴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몽고가 집에 와서 며칠 회복을 한 뒤 원장 선생님은 '두니'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우리 집에 데려 오셨다.


두니의 사료와 몽고의 간식을 챙겨 온 원장 선생님은 두니를 우리 집에 두고 가셨고, 우리는 같은 종의 샴이 두 마리가 되어 매일 그들을 보게 되었다. 같은 종이라도 얼굴은 다르고 털의 윤기도 다르기 때문에 둘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함께 사는 펫은 주인을 닮는다더니 몽고는 동생의 얼굴을 좀 닮았고, 성격도 비슷했다. 두니 역시 원장 선생님을 닮았는데, 특히 턱이 닮아서 너무나 신기했다. 그렇게 몽고는 가까이서 보고 함께 생활하는 첫 냥이를 만났고 그의 행동을 종합해 본 결과 '사랑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두니가 가는 집안 곳곳을 함께 다니며 가이드를 하는 모습이었고, 자고 일어나면 '너 이쁘다'를 규칙적이면서도 오랜 그루밍(동물들이 혀, 손발로 털을 손질하는 행위)으로 표현을 했으며, 좋아하는 간식을 그녀에게 양보하는 모습에선 이미 그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사료 역시 두니가 먼저 먹고서야 먹었고, 두니가 자면 옆에서 함께 자는 등 두니의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나름 귀하고 도도하게 자란 몽고인데, 어느새 그녀의 포로가 되어 사랑에 빠진 남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반면, 두니의 행동은 조금 달랐다. 새초롬한 그녀는 몽고에게 한결같이 도도했으며, 먹이를 먼저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몽고의 그루밍은 조금 투덜대는 느낌으로 받고 있었다. 집안 어디에도 몽고의 에스코트는 당연하게 받는 모습이었고, 장난을 치며 놀기는 했으나 이내 고양이 특유의 까다로움을 보여주었다. 몽고가 싫지는 않지만 대우는 받아보겠어! 란 느낌.


 거울을 본 듯한 착각이 들게 닮은 모습이지만, 닮지 않은 두 냥이. 뒷모습이 몽고, 정면이 두니이다.

그렇게 둘은 큰 사건 없이 알콩달콩 행복한 2주를 보내고 두니는 동물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두니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건강한 새끼 냥이들을 출산했다고 한다. 우리는 교배가 처음이었고, 몽고 이외의 고양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보수(?)를 두니 측으로부터 받게 되었다. 그리고 몽고의 간식과 먹거리를 사는 데 사용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몽고는 그 뒤로 두니를 그리워해서 집안에서 그녀를 찾거나 울거나 하지 않았다. 마치 누가 왔다 간 것에 대한 기억도 없는 모습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별을 이미 예감한 냥이처럼 두니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 모습이었고, 스치듯 지나간 두니쉽게도 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진자리, 마른자리 챙겨줬으면서.

비록 그들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인간의 결정에 의해 만나고 헤어진 상황이지만 아무 불만을 갖지 않은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서로 죽고 못살겠다고 하면 감당을 어쩌나 싶기도 했다. 우리의 계획은 교배가 끝이었기 때문이고 플랜 B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의 사랑은 저렇게 쿨할 수 있나 생각해 본다. 나는 한 때의 불같은 사랑을 꿈꾸기도 했지만 그렇게 아무 일없이 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고 싶고, 그 사람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통해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깨닫게 된다.

오늘도 고양이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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