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함께 살기로 결정 후 나는 서울로 오게 되었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유는 어떤 직업으로 일을 해도 하고 싶은 게 이것이 아니라는 혼란스러움. 아직도 꿈에 연연하며 살고 있었지만, 문제는 그 꿈이 정해지지 않아 막연한 무언가라고만 생각하면서 시간만 흘러가는 상황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아도 좋아하는 것은 너무 많았고, 직업으로 여러 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정은 쉽지 않았다. 어떤 일에도 만족을 찾지 못한 내 인생은 일에 대한 안정기가 되기도 전에 다른 일을 찾는 불안한 상황의 반복이었으며, 일찍 꿈을 찾은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봐야 되는 시간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있으면서 일을 찾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이제 내 인생은 이러다가 끝인가 싶어 무섭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여 깊은 우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짧은 삶이었는데, 이러려고 태어난 건지 한심하고 참담했다. 우울한 생각이 많이 들기 시작하자, 무기력한 하루하루에 지쳐 아침이 되면 빨리 밤이 되길 바랬고, 밤이 되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패션 디자이너로 교육을 받아 활동할 수 있는 공고를 보고 너무나 기쁘고 반가웠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디자이너의 삶은 노동이 대부분이라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시절) 무엇보다 옷과 함께 하루 종일 있는다는 것이 너무나 기쁜 일처럼 여겨졌다. 전공과는 무관했음에도 마치 잊고 있던 천직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랬음에도 자신이 없어 또 고민을 하다가 어렵게 지원을 했고, 주어진 하루를 무의미하게 채워가며 내 인생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날 역시 동생은 출근을 하고 몽고와 나는 자신만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디자이너가 되는 기회에 지원한 지 시간이 꽤 흘러가고 있어서 내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내가 응모한 프로젝트의 주최 측에서의 연락이었다. 냉정하게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내용.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것이라 서울에 거주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나는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자격사항에는 전공은 무관하다고 했지만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그랬다면 난 지원하지 않고 다른 일을 알아봤을 텐데... 놀리는 건가 싶은 마음에 분노와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언가를 믿고 오랜 기다림의 끝이 성공과 실패가 아닌, 처음부터 내 자리가 아니었다는 그 허탈감은 마음을 끝도 없이 무너지게 했고, 우울함과 존재의 이유를 묻던 날들의 마지막엔 절망뿐이었다. 이미 여러 일로 지쳐버려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리며 서럽게 울고 있는데, 몽고가 어느새 내 방에 들어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어 내 다리에 놓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내 몽고는 내 다리에 자세를 잡고 앉아 나를 안아주듯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는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 말없는 위로가.....
내 눈물을 멈추게 하고, 내 마음을 절망에서 꺼내 주고 있었다.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에 내 손을 잡아준 것이 동생의 고양이라니..... 그 위로가 당황스럽고도 고마워 한참을 울고 기운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몽고에게 위로를 받아 새롭게 생각을 바꾼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도 몽고는 도도한 모습으로 동생과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나는 그 날을 잊지 않고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금 돌아가면서도 디자이너의 길을 잊지 않고 살다가 기회가 되어 그 직업에 녹아들 수 있는 날도 찾아왔다. 그리고 그 날의 위로로 더욱 몽고 바라기가 된 것은 나였고, 몽고는 거실에서 마주치면 존재를 인정하는 눈빛 정도는 허락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