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못해 쓰리다
내겐 아직 서른이 안된 앳된 동서가 있다. 올 4월에 결혼했으니 신혼 티도 벗지 않은 말 그대로 신선한 새댁이다. 나와는 11살 차이가 나는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서른도 안된 20대의 여자. 긴 생머리에 만화에서 튀어나올 듯한 여리여리한 이미지 거기에 현명하기까지 하다. 곧 퇴임을 앞둔 친정 어머니마저 현직 교사다. 지성과 미모를 고루 갖춘 백만 불짜리 며느리가 내 동서가 되었다.
어제 시댁에 내려왔는데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을 계약했단다. 얼마 전까지 청약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떨어진 모양이다. 집값은 계속 오르고 불안한 마음에 전세 낀 집을 매매할까 고민한다는 연락을 받은지 며칠이 안된 거 같은데 통도 크게 계약이라니! 5억이 훌쩍 넘은 아파트를 계약했다고 하니 낀 전셋값은 둘째치고 나머지 금액을 어찌 구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신랑이 묻는다. 2억은 양가 부모님이 보태주시고 9천은 그동안 모아둔 돈이랜다. '그렇구나. 쩝!' 신랑의 '쩝' 할 때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러움과 아쉬움이 한 데 섞여 나지막이 튀어나온 쩝!
누군가는 양가에서 보태준 2억에 눈길이 가겠지만 내가 속이 쓰린 건 그들이 모았다는 9천만 원이었다. 신혼집을 구할 때 이미 그들의 돈을 보탠 걸로 안다. 4월에 결혼해서 12월까지 어떻게 하면 9천을 모을 수 있단 말인가! 아이가 없는 맞벌이 부부이지만 둘 다 초등학교 교사 공무원이다. 지난번 집들이 차 집에 방문했을 때 온갖 주식이며 부동산 등 재테크 관련 책이 있는 걸 봤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으로. 20대면 꾸미는 걸 좋아할 나이임에도 옷가지며 꾸밈 아이템이 없는 걸 보며 대략 짐작은 했다만 이 정도라니.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다짐했던 올해였지만 어리고 예쁜데 재테크 능력을 갖춘 동서 앞에서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입은 툭 튀어나오고 짜증지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신랑의 쩝! 소리가 귀에 남아 너는 도대체 뭘 한거냐며 질책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버는 것보단 쓰는 일에 모든 감각이 열려 있다. 지금 당장 돈이 없어 못하는 것보다 미래의 돈을 당겨와서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지르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관심이 많은 내가 정작 미래가 다가왔을 땐 당겨 쓴 돈을 제 몫으로 가치 있고 쓰임 있게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신랑은 괜찮다며 전업주부가 되기 싫은 나에게 투자한 거라고 장난치듯 말을 한다. 내가 아무리 잘 풀린다 한들 9천만 원은 무리일 거 같은데...
우리가 집을 분양받았다고 했을 때 시부모님은 왜 젊은 나이에 빚 있는 인생을 살 거냐며 반대하셨다. 그때 신랑 나이 지금의 시동생과 같은 서른둘이었다. 우리가 실제 살아야 할 곳임에도 아파트는 더 이상 투자가치가 없다며 직접 부동산에 분양권을 내놓기도 했다. 신랑이 하루라도 내 집에서 편하게 살고 싶다 말을 하고 부동산에서 분양권을 사기 위해 안달 나는 모습을 보이자 그래 그럼 한 번 살아봐라! 하셨더랬다. 그 집이 지금 2억이 넘게 올랐다. 지금은 그때 팔았으면 어쩔 뻔했냐며 미안해하시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동생네는 빨리 집을 사게 하려고 하는 듯하다. 첫째 아들이라 시행착오가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는 신임이 없어 보이고 그들은 똑 부러지고 뭐든 잘하는 이미지다.
그렇다. 이것 또한 자격지심이다. 나이 많은 며느리. 할 줄 아는 거 없고 아들도 못 낳고 벌어놓기는 커녕 모아놓은 돈도 없다. 신랑 월급으로 집값, 차값 빠져나가도 내 욕심만 버리면 4 식구 그럭저럭 살 만하다. 그럼에도 나는 왜 더 무언가 되고 싶어서 이 난리란 말인가.
신랑이 말한다.
"왜? 사촌이 땅을 사서 배 아파?"
그래! 배가 아프다!
그 젊음이, 그 현명함이, 이미 다 갖추어진 듯한 그 모습들이 너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