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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May 29. 2023

당신의 영어 생존력은?

'할 줄 안다' 판별하기 시리즈 ②외국어편


시카고 공항에서의 참극


어학연수나 워킹홀리데이가 한창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할 때쯤인 약 20년 전, 대학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필자에게도 그 유행의 물결은 예외가 아니었다. 모름지기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갈 대학생이라면 외국물 한 번 먹어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냐는 논리로 부모님의 승낙을 얻었다.

그렇게 오게 된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미시간으로 가는 그레이하운드를 타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미쿡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내 질문을 받은 흑인 여성이 길 안내 답을 했다.

맙소사.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달간 회화 학원도 다녔고, 오가며 MP3로 CNN뉴스도 듣고, 미드를 자막 없이 시청하기도 하며 나름의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흑인들은 전혀 다른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그리고 미국인들은 TV에서 보는 것처럼 친절하지는 않다는 것을.





지난 회에 이어서 '할 줄 안다'의 의미를 파헤쳐보고 있다.

외국어에 대해서도 '할 줄 안다'의 기준을 나름대로 잡아보려고 한다.



■ 설정 Set-ups

1. 이런 단계를 나누는 것은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기준으로 단계를 구분해 본 것이다. 다른 기준으로 분류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신만의 분류법으로 나누어보기 바란다.

2. 이 세상 모든 언어에 대해 이해한 후에 이런 글을 작성하려면 글 한 편을 쓰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부득이, 필자가 이해도가 있는 영어를 중심으로 글을 써보았다.

3. 이 글은 재미로 보는 순위 콘텐츠와 다를 게 없다. 만든 사람의 주관적 기준에 따른 것이므로 읽는 입장에서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다.

4. 어느 누구의 법률적,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정답은 없다. 특정 행태가 나쁘거나 좋다는 판단은 부적절하다.





말하기 능력


외국어의 실력을 측정하는 방법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한다. 각종 어학 시험에 의해 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것도 듣기와 말하기 수준도 측정하여 점수와 등급으로 표시해 준다.

하지만, 토익 점수가 높다고 다 영어를 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스피킹 시험 점수라면 약간은 반영될 수 있겠으나, 그 점수가 의미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실생활에서의 외국어 구사 수준을 보고 손쉽게 판별하는 기준을 잡아보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OOO 걔 영어 잘하더라", 혹은 "너 영어 할 줄 알아?"와 같은 흔한 일상 대화에서 영어 시험 점수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재미있는 방법으로 구분해 보자는 것이다.

누군 MBTI 보다 정확하고 정밀한 성격유형 검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간편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성격 유형을 이야기할 때 MBTI를 사용하는 것이지 않는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다소간의 능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읽거나 듣는 쪽보다는 쓰거나 말하는 쪽이 능동적이라고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일상에 더 밀접한 것은 단연 말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에, 말하기 실력으로 아래와 같이 수준을 나누어 보았다.



1단계) Arrest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단계이거나, 알아듣더라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단계이다.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호흡이 가빠지며 머리가 하얗게 된다. 이른바, 패닉 상태가 되는 것이다. 외부에서 관찰했을 때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식은땀을 동반한 미세한 경련, 구강 마비상태가 나타난다. 심한 경우 심정지(어레스트)가 올 수도 있다. 전형적으로 초중고를 거치며 책으로 영어를 '공부'만 한 사람에게서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애초에 영어를 조기 포기하신 분들이라면 이런 위기 상황을 감수하기로 했으니 오히려 용감할 수 있다. 용감하게 한국말로 대답한다.


2단계) Mombrims

'몸부림'을 통한 의사전달 비율이 50% 내외이다. 일단 눈치로든 리스닝으로든 대략 절반 이하 정도 알아듣는다. 외국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아들으니 대답을 해야겠다는 심적 압박이 밀려온다. 대답을 위해 순간적으로 떠오른 단어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연결고리 같은 건 취급하지 않는다. 말을 토막으로 끊어서 단어만 던지면서 손, 발, 표정을 통해 토막과 토막 사이를 메꾼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손발을 묶어놓으면 말도 못 한다. 외국인과 대화하고 나면 평균 400~500 kcal 정도의 칼로리 소모가 있다.


3단계) Nareums ★

'나름‘ 갖춰진 문장 구조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약 50% 정도 내외로 알아듣고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때부터는 어지간한 단기 해외여행에서의 생존은 가능하다. 단, 주로 여행 목적의 짧은 체류 기간 동안의 영어 환경 노출이기 때문에 표현과 소통이 제한적이다. 호텔과 공항, 면세점, 유명 관광지 등을 벗어나면 전투력이 급격히 낮아진다. 단기 여행 중에는 좀처럼 갈 일이 없는 이발소, 카센터, 병원, 동사무소 같이 현지인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살짝 깊이 들어가는 순간 약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3단계 정도 되면 대처능력도 향상된다. 장비(번역기)를 사용하여 위기를 벗어나는 능력을 발휘한다.


4단계) Wenmankuems

문장 형태의 표현이 다채로워진다. 미드와 영드를 통해 익힌 표현을 응용하고 실전에서 '웬만큼' 써먹는다. 네이티브와 30분 이상의 꽤 긴 시간도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이 정도 되면 나름의 자신감도 있고, 외국인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거의 없다. 바디랭귀지 의존도가 낮아졌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중급 난이도의 전화 통화도 가능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영어로 인간관계 형성이 되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는 부류가 어떤 외국인이냐에 따라 테크트리가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테크트리-1) 스트리트 잉글리시

흑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영어로 이른바 슬랭(slang)이 난무한다. 인종에 따라 구사하는 언어의 특성이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대체로 거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이다. 이쪽 테크트리를 타면, 갱스터나 래퍼의 느낌을 풍기면서 영어를 하게 된다.

테크트리-2) 스탠다드 잉글리시

대체적으로 고학력층, 고소득층의 백인들이 구사하는 억양과 발음, 어휘와 표현을 사용한다. 주로 영어권 국가의 고급 교육기관(대학, 대학원)에서 정규 교육을 받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낸 것이 언어 구사에 묻어나게 된다.


5단계) Jayujajae

일상생활에서의 거의 모든 영역뿐만 아니라 자세한 감정 묘사까지 '자유자재'로 가능하다. 3단계에서 제한적인 환경에서만 구사 가능하던 영어는 5단계에 도달하면 지평이 넓어진다. 병원, 이발소, 의류수선샵, 관공서 등 중장기 체류 시 접하게 되는 환경에서도 의사소통이 자유롭다. 국내에서나 외국에서든 외국인과의 다양한 인간관계 형성이 이루어지며, 심지어는 연인 관계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늦은 실력 단계에 있는 사람이 외국인과 이성교제를 시작하면 이 단계까지의 단기간 고속 테크가 가능하다. 단, 이성교제를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 말이 통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그것이 문제다. 여하튼, 영어로 랜챗(랜덤채팅)을 하려면 적어도 이 단계는 넘어야 가능하지 싶다.


6단계) Shwala-shwala

고차원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영어로 대학/대학원 수업을 듣거나, 세일즈, 비즈니스 미팅, 프레젠테이션, 채용면접이 가능하다. 개인차가 다소 있겠지만 이 단계에 도달한 수준의 사람들은 가용 어휘는 약 4만 개 전후로 볼 수 있다. 언어뿐만 아니라 영어권 국가의 문화 코드나 정서 이해도가 높아 네이티브 외국인들이 느끼기에도 이질감이 적다. '쏼라쏼라'는 일반인이 들었을 때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급 영어 구사를 묘사하는 의성어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입장에서 영어를 배우고 익혔을 때의 실력 단계를 위와 같이 구분해 보았다. 한국인이지만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부모님 중 한 분이 영어권 국가의 네이티브이거나 하는 경우는 영어가 모국어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보아야 하기에 여기까지만 다루기로 한다.


영어를 '할 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3단계부터라고 생각한다. 해외여행 등의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느냐의 없느냐의 선에서 그 위와 아래가 명확히 나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3단계 아래는 누가 봐도 영어 못하는 수준이고, 3단계 위쪽으로는 잘한다고 보아야 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쉬운 판별표


이미 여러 종류의 어학시험이 영어 실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만의 방식으로 나누어본 것은,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도 본인 또는 제3자가 관찰만으로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니, 이제 판별을 쉽게 해 줄 간단한 표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제시된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영어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물론, 과학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의 직관과 경험칙은 크게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정확하게 딱 떨어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비슷하게 얼추 맞는 부분도 꽤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실 우리는 은연중에 생활 중 아주 빈번하게 직관과 경험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아무튼, 위와 같은 퀘스트 방식으로 영어실력을 판별한다면 그야말로 실용적인 측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번외의 의문


영어 실력 단계는 그렇다고 치고, 번외로 떠오른 의문이 있다.

아래의 상황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독자들께서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영어로 대화 중 비명을 지를 때

영어로 대화하는 상황이라면 우리의 뇌에서는 활발하게 영어로 생각하기가 작동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만약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발등에 떨어뜨렸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오게 될 것이다. 이때, 사용 중이던 언어인 영어로 'Ouch!'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외국인과 나누고 있었던 의사소통과 무관하므로 한국어로 '아야', 혹은 '아, Tlqkf'이라고 해야 할까?


외국인에게 한국 지명을 말해줄 때

외국인에게 길안내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을 해보자. 수락산역을 설명해주어야 하는데, 외국인들이 흔히 하는 발음대로 'Suraksan'이라고 한껏 R발음을 굴려 발음을 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어 원래 발음대로 담백하게 '수락산'이라고 한국어 네이티브의 발음으로 얘기해주어야 할까? 참고로 필지와 수락산은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외국인에게 외국 지명을 말해줄 때

외국인 친구에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moscow)를 얘기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의문이 든다. 러시아 현지인들은 '모스크바 [moskba]'라고 발음을 한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알파벳 읽는 방식대로 '모스코우 [moskou]'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외국인 친구에게 '모스크바'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미국식대로 '모스코우'라고 말해줘야 할까?


필자의 주변에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내 주관에 의거한 답을 해보았다.

영어로 대화 중 비명을 지르게 된다면 그것까지 영어로 옮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얘기하고 영어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영혼까지 미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에게 한국 지명을 설명할 때는 한국어 발음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지명은 고유명사이므로 우리 발음대로 해주어야 한다. 영어로 얘기할 때는 우리가 비모국어로 얘기하는 상황이지만, 우리나라 지명을 설명할 때는 듣는 외국 놈이 알아서 주워 들어야 한다. 전세 역전이다.

외국인에게 외국 지명을 설명할 때는 현지 발음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례에서 '모스크바'도 고유명사이다.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은 알파벳이라는 공통 표기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라틴어, 스페인어를 비롯하여 많은 유럽 국가의 언어를 자기들 모국어처럼 읽고 있다. 하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각자의 생각은 다 다를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다.





필자가 외국계 은행에 재직하던 시절 미국인 부행장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이분은 고향이 캘리포니아 출신이어서 그런지 흥도 많고 유머러스해서 한국인 직원들과도 자주 어울리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인 부행장님을 모시고 한국 직원 여러 명과 회식을 하게 되었다. 식사 후 노래방까지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 미국인 부행장님이 돌발 콘테스트를 제안하셨다.


"I would like to propose a contest at this moment, giving $500 to the best English pop singer."


영어 팝송을 가장 잘 부른 1명에게 500달러의 상금을 걸다니...

게다가 참석한 한국 직원들은 필수로 한 곡씩은 전부 하는 분위기였다.


'어쩌지? 내가 아는 영어 노래는 죄다 하드락이나 헤비메탈뿐인데...'


K 차장님이 도전한 '비틀즈'의 'I Will'이 지나가고, J 과장님과 L 대리님이 듀오로 부른 'Abba'의 'Dancing Queen'이 나왔을 때는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대로라면 500달러는 댄싱퀸에게 갈 게 뻔했다. 필자는 현재의 분위기를 압도할 노래를 걱정스레 찾고 있었다.


잠시 후, 이 한 곡으로 500달러를 손에 넣었다.


참고자료

- OPIc 공식 홈페이지 : "OPIc 등급 체계"

- EFSET : "영어 능력 등급"

- Tracktest : "국제공인영어 능력 레벨 안내English language levels (CEFR)"

- Youtube : 날라리데이브! "손석구 영어 실력 역대급인데?"

- Youtube : 일간 소울영어 "국내파를 위한 영어 공부법 | 해외파 연예인과 스타일 비교�"

- 네이버블로그 : 911어학원 "영어 단어, 미국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Main Photo : Guilherme Rossi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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