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과 인내심을 회복시키는 매운맛
자고 있던 소정의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 손이 있다.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이 자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사정없이 공격한다. '으음'하는 신음이 절로 나오지만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질 않는다. 엄마가 어서 일어나 자신과 놀아주기를 원하는 윤서는 엄마의 눈꺼풀을 밀어 올려 눈을 뜨게 하고 싶었나 보다. 어린 딸의 요구에 당해낼 수 없던 소정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딸을 안아 올린다.
"우리 윤서 잘 잤어요?"
"아바 음따다."
"응, 맞아요. 아빠는 회사 가셨어요."
"아바 해사."
딸 윤서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점점 아이의 언어발달에 신경 쓸 시기인지라 태블릿 PC를 켜고 영어 동요를 틀었다. 밤사이 윤서의 기저귀는 축축하게 젖다 못해 묵직해져 있었다. 아이를 내려놓고 냉장고에서 이유식을 꺼내 데운다. 분유도 같이 준비한다. 15개월 된 딸 윤서는 잘 먹고 튼튼한 예쁜 딸이다. 그리고 아침잠이 없는 편이다. 소정은 아직도 정신이 몽롱하다. 딸의 아침식사를 데우는 동안 기저귀를 갈아준다. 소정은 입이 찢어질 것처럼 큰 하품을 한다. 이제는 제법 커서 걸음마도 할 수준이 되어서 선 채로 기저귀를 갈아주지만 활발한 딸 윤서는 엄마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놓을 생각이 없다.
소정은 올빼미형이라고 할 수 있다.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편이다. 학창 시절에는 조용한 새벽 시간에 집중이 잘된다는 이유로 낮에 자고 밤에 공부하는 식이었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밤늦게까지 어울려 놀고 다음 날 퀭한 눈으로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퇴근 후 집에서 마시는 맥주와 IPTV 영화는 양보할 수 없는 낙이었다. 외국계 리서치 회사에서 근무하던 소정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직장을 휴직했다. 남편도 육아휴직을 마음먹고 있지만, 되도록이면 아이가 어릴 때일수록 아빠보다는 엄마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소정이 먼저 육아휴직을 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도 소정은 밤 시간을 즐겼다. 모유수유가 끝난 이후부터는 밤에 윤서를 재워놓고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적응되지 않는 것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남편은 소정과 달리 아침형 인간이다. 오늘도 소정과 윤서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출근을 했다. 아침잠이 없는 윤서가 남편을 닮아 그런 것 같아 괜스레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처음엔 익숙지 않았던 엄마로서의 일들이 딸 윤서가 자라면서 점차 소정에게도 익숙해졌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에 더해 하루하루를 즐겁고 유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소정이 생각하는 엄마의 임무였다. 아이를 유아용 의자에 앉히고 턱받이를 씌운 뒤 준비한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소정은 모닝커피를 한 잔 마셨다. 윤서는 밥을 먹으면서 종종 앉아 있던 유아용 의자를 발로 딛고 일어서기도 했다. 태블릿 PC에서 등장하는 캐릭터가 영어 동요를 부르며 하는 율동을 따라 하는 것이다. 소정은 그럴 때마다 다리가 긴 유아용 의자가 옆으로 쓰러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당연히 식사 테이블은 엉망이 되고 윤서의 입 주변과 옷은 여러 곳에 음식이 묻었다. 심지어 흥에 겨운 딸은 손에 든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치거나 공중에 휘둘러댔다. 그러다가 숟가락이 종종 어디론가 날아가기도 했다. 없어졌던 숟가락이 세탁실에서 나온 적도 있었다. 딸이 이유식을 다 먹으면 약간의 분유로 보충을 해준다. 만족스럽게 배가 부른 윤서는 놀이매트 위로 올라가 타요 스쿨버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버스의 이곳저곳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만화 캐릭터의 목소리가 나오는 식의 장난감이다. 윤서는 이 장난감을 참 좋아했다. 그 사이 소정은 얼른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까도 고민했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이미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맘카페나 육아 관련 유튜브에서는 3세 이전에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에 찬반양론이 있다. 남편과 깊이 상의한 끝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일찍부터 어린이집을 보내는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점은 육아노동의 양적 감소를 꼽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단 몇 시간 동안이라도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육아 전문가들은 영유아기 부모와의 애착과 정서적 안정감을 이유로 들어 이른 어린이집 보내기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아이와 애착관계 형성에 조금 더 시간과 정성을 쏟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어린이집은 3세 이후에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지금도 소정과 남편은 그것이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고된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나서 식재료를 사기 위해 장을 봤다. 카트에 앉은 윤서는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럴 때마다 소정은 아이에게 반응을 해주고 아이가 호기심을 갖는 물건들을 보여주고 만져보게 했다. 윤서는 특히 청과물 코너를 좋아했다. 사과, 오렌지, 귤, 파인애플 같은 과일의 겉껍질 질감을 만져보고 들어서 무게는 느껴보는 자극을 좋아했다. 토마토는 빨간색, 당근은 주황색, 파프리카는 노란색, 아보카도는 초록색... 색깔 공부를 하기에도 마트의 청과물 코너는 제격이었다. 쇼핑카트에 마주 앉은 윤서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반응하는 소정의 얼굴은 짧은 시간에도 수많은 표정을 만들어냈고, 목소리는 아이의 흥미를 자극하는 강약고저의 다채로운 변화가 있었다. 시식코너를 지날 때면 놓치지 않고 작은 떡갈비 조각이라도 아이 입에 넣어준다. 아이가 소화시키기 어려운 삼겹살이나 소시지 시식은 아직 이르기 때문이다. 윤서에게 마트는 온통 흥미로운 것들 투성이 이지만 소정은 이제 슬슬 다리가 아파온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결혼 전 소정은 아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태어나고 나니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임신 중일 때부터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서적을 여러 권 남편과 함께 읽었지만, 윤서가 태어나고 나서 자신이 이렇게 '엄마스럽게' 바뀌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엄마스럽게 바뀐 자신의 모습이 싫은 것이 아니다. 이따금씩 전에 없던 자신의 모습을 체감할 때마다 '훗'하고 헛웃음을 짓게 된다.
'언제부터 그렇게 애를 좋아했었다고 말이야.'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외출에서 돌아와 아이의 손과 발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장본 식재료들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 준비를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윤서에게 먹일 이유식이 떨어져서 직접 만들어야 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영양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소고기, 야채, 버섯을 잘게 썰어 볶고, 밥을 죽처럼 질게 끓였다. 인덕션의 열기가 더해져 소정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빵울이 맺혔다.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동안 윤서에게는 TV에서 나오는 유아용 교육영상을 보여 주었다. 윤서는 TV 속 영상을 보며 반응하고 장난감을 만지기도 하며 놀이매트 위에서 영상 속 춤을 따라 하기도 하며 나름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소정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던 찰나에 윤서가 어느새 소파 등받이 위에 올라서 있었다. 너무나 위험해 보이는 자세였다. 소정은 놀라 윤서에게 뛰어갔다. 그 바람에 놀란 윤서가 소파 위로 떨어지며 얼굴을 등받이에 부딪치고 말았다.
"아아앙!!!!!"
윤서가 울음을 터뜨렸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한 우렁찬 목소리다. 신생아 시절에도 자다 깨면 이렇게 우렁찬 목소리로 울어재끼곤 했었다. 소정은 놀라 얼른 윤서를 안아 올렸다. 이미 눈물범벅이 된 윤서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볼에서 관자놀이까지 살짝 붉게 쓸린 자국이 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윤서 안 보고 딴짓하고 있었네."
윤서를 달래느라 한참을 품에 안고 있었더니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온 힘을 다해 우는 열 덩어리 윤서를 안고 있었더니 자연히 소정의 몸도 땀에 범벅이 되고 말았다. 상처가 흉이 질까 싶어 붉게 일어난 피부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겨우 달랜 윤서에게 방금 만든 이유식을 먹이니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이고 윤서와 놀아주고 있으니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회식이 있어 늦는다고 한다. 한숨을 깊게 쉬고 소정은 윤서를 목욕시킬 채비를 했다. 보통은 윤서를 목욕시키는 것은 퇴근 후에 남편이 해주었었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풀타임 독박육아를 하게 된 것이다. 욕조에 윤서가 좋아하는 거품 입욕제를 넣고 물을 받았다. 오리랑 배, 공 같이 물놀이용 장난감들을 욕조 안 물 위에 둥둥 띄워 놓는다. 윤서를 욕조에 넣고 소정도 함께 들어가 물장난도 하고 거품 장난도 하며 신나게 놀았다. 머리도 감기고 양치질도 시켰다. 온몸에 거품 비누칠을 물로 닦아냈다.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주고 온몸에 바디로션을 골고루 발라주었다. 침대에 눕히고 기저귀를 채우고 잠옷을 입혔다. 자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방 조명도 어둑하게 하고 잘 때 듣는 오르골 자장가를 틀었다. 윤서를 품에 안고 침대에 같이 누워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준다. 머리를 쓰담쓰담해준다. 소정은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휴대전화를 조작하더니 이내 끝냈는지 곧 화면을 끄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사이 윤서는 눈을 감고 조용히 공갈젖꼭지를 빨다가 잠이 들었다. 소정은 아이가 깨지 않도록 슬며시 곁을 빠져나와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휴우~'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똑똑똑'
'왔다!'
밖에서 현관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소정은 반가운 듯 발뒤꿈치를 들고 잽싸게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현관문을 빼꼼 열자 문 앞에 비닐봉지에 쌓인 무언가가 놓여있다. 집 현관문 바깥쪽에 '아이가 자고 있어요. 벨 누르지 마세요. 노크해 주세요.'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필요한 만큼만 현관문을 열고 비닐봉지를 들여왔다. 윤서의 장난감과 놀이매트로 점령당한 거실은 이제부터 소정의 차지였다. 접이식 테이블 네 다리를 펼쳐 TV 앞에 놓았다. 접이식 테이블 위에 방금 가져온 비닐봉지를 올려놓았다. 냉장고에서 가져온 시원한 맥주 한 캔도 올려놓았다. 리모컨을 들어 TV채널을 돌렸다.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데 필요한 적당한 볼거리를 찾았다. 이윽고 자리를 잡고 앉아 비닐봉지를 열기 시작했다.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아 뜨끈뜨끈한 온기가 손에 전해져 왔다. 랩에 쌓여 있는 포장을 풀고 큼지막한 뚜껑을 열었다. 새빨간 국물에 잠겨있는 떡과 오뎅들이 소정의 눈에 들어왔다.
"유후~!!"
절로 흥이 난다. 숟가락을 들어 비현실적으로 새빨간 국물의 맛을 본다. 달달하고 짭짤하고 매운맛에 몸이 전율했다. '그래, 이 맛이야'를 속으로 연신 외치며 가차 없는 숟가락과 젓가락의 양손질로 떡볶이를 흡입한다. 떡의 쫄깃한 식감과 오뎅의 찰진 느낌이 아우라 진다. 감동적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눈물은 절대 매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닌 것이다. 감동할 만큼 맛있기 때문이다. 맥주캔을 딴다. 벌컥벌컥 들이켠다. 입안에 가득 찬 매운맛과 맥주의 탄산이 만나자 혀를 따끔따끔 자극했다. 소정이 좋아하는 매운맛 단계는 적당히 땀이 배어날 만큼 매운맛이다. 분모자와 메추리알도 양보할 수 없다. 혀 끝을 자극하는 매운맛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하기 위해 직장도 휴직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이 들 때까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더 없이 소중하다. 하지만, 소진된다. 항상 하루의 끝에는 체력도 정신도 소진되어 너덜너덜해진다.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쓰고 싶은 욕구를 억눌러야 한다. 자신을 예쁘게 보이기 위해 정성을 들여 화장을 하고 몸단장을 한다거나 백화점에 가서 자신이 관심있는 품목들을 둘러보는 것. 저녁은 자신이 원하는 메뉴로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따위는 이제 소정에게 사치스러운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일상이 윤서를 위해서 돌아가고 자신의 욕구는 뒷전으로 미뤄야하는 나날이 계속되는 것이다. 부지런히 입을 놀리며 눈은 TV를 향해 있다. TV 드라마에서 모녀간의 티격태격하는 대화 장면이 나왔다. 불현듯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도 나를 키울 때 이렇게 자신을 많이 포기했겠지.'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숫가락, 젓가락이 잠시 멈췄다. 짧은 순간 정지된 것처럼 멈춰있던 소진은 티슈를 뽑아 눈가를 닦았다. 그런 다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바쁜 양손 움직임을 이어갔다. 이건 매워서 흘린 눈물 아니야. 엄마 생각나서 운 거 아니야. 단지, 감동적으로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 것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