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는 사람은 없다.
나누지 않는 것이 지혜이고 선이라면,
깨달음을 위해 먼저 깨우칠 것은 나눔이다.
나는 '싫은 것'에 집착을 한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것'에는 소홀해지기 일쑤다.
싫은 것에 집착하게 된 계기는 오래됐다.
시작은 '왜' 였던 것 같다.
세상사도 인간사도
왜... 로부터 역사가 시작되는 건 확실히 진리다.
싫은 것에 정성을 쏟으면 우월감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가벼웠고, 가벼이 보였다.
또한 쉽사리 읽었고, 쉽사리 읽혀졌다.
결국 지겨웠다.
좋은 것에 정성을 쏟았는데 배신으로 돌아왔다.
그건 정말 '왜'였다.
무지함은 나르시시즘의 휘장을 두르고서
생각보다 오랫동안 심신을 지배했다.
그 나르시시즘은 전부 싫어하고 전부 사랑했다.
전부가 아니면 필요 없었다.
휘장을 두르고
한 칸, 두 칸 발을 떼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세상과 멀어지고 스스로 장님이 된다.
사랑은 무력하고
문제는 중구난방에서 터지는데
출구가 나 하나란 것이 고독 같았다.
그런 맥락에서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끝까지 나눠본다는 건 중요한 작업이다.
단순하지만 섬세함을 요하기 때문에
때로는 '압도'가 뒤쫓아 오는데, 그때가 바로 기회다.
압도는 '영광'을 데리고 다닌다!
이래저래 압도의 순간은 쫄리지만..
숨이 턱 막혀올 때, 무심코 마주치는 영광은 꽤 느낌이 좋다.
결국 남는 것이 욕심과 기대에 대한 자각이어도
욕심이 있는 한 '좋은 것'은 아픔의 근원이고
기대를 가지는 한 '싫은 것'은 상처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한다면 '진짜'를 찾을 수 있겠지.
나는 단순한 편이라
아픈 것은 안보이고 상처는 눈에 보이니까
상처를 치유하는 쪽을 택했다.
'싫은 것'을 탐구하는 일은 상처의 근원을 탐구하는 일이다.
매일 쓰려도, 매일 즐겁게.
그렇게 나는 진하게 사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