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말했다.
우리의 창조적 에너지인 리비도가
어디를 향해 돌고 도는지를 탐구해야 한다고.
나는 그것을 탐구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순간 우리가 내리는 선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대 시절, 일하던 곳에서
"급여는 원하는 대로 맞춰 줄 테니 계속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일 근무 같은 현실적인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내가 정해 놓은 어떤 음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현실이 아닌,
이상적인 나를 택했다.
그리고 나의 리비도는
그 선택이 세운 이정표를 따라
복잡한 미로 속으로 던져졌다.
문제는
페르소나가 만들어낸 그 미로를
나의 리비도가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나는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나를 살아내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절감한다.
가까스로 양지에 서 있는 나는
생각보다 훨씬 어두운 사람이라는 것을.
만약 그때
많은 보수를 받고
조건을 내세워 현실적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처럼
나의 무지함을 두고 이렇게까지 절절했을까.
종이에 베인 것과 칼에 찔린 것이
결국엔 아픔으로 만난다면
가볍거나 무겁거나
선택에 너무 많은 힘을 주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