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리뷰 (1)
나는 학부 시절 교육학을 전공한 탓에,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접할 만한 '교육의 정의'에 익숙해져 있다. 맹자부터 이웃집 아저씨까지, 교육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중에서도 학문 차원에서 교육학을 접한 사람은, 정범모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의 정의는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교육을 정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교육은 다음으로 정의한다.
나는 얼마 전 울고 웃으며 시청한 「나의 아저씨」를 통해 교육의 정의를 좀 더 확장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결코 학술논문도, 신문 기고글도 아니며, 정범모 교수에 대한 아카데믹한 반박도 절대 아니다. 그저,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내가 최근에 대중문화를 통해 느낀 바를 서술하는 에세이다. 앞으로 내가 연재하게 될 이런 류의 글은 다 평범한 소시민의 에세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나의 아저씨」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어릴적 아버지와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던 채권자 아저씨를 살해한 이후, 외부로부터의 소외와 폭력에 무감각해져버린 지안(이지은 분). 그리고 삼형제 중 둘째로 어머니 속 안 썩이며 변호사인 부인과 유학 간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대기업 부장, 동훈(이선균 분).
겉으로만 보면 전자는 시궁창 인생을 살고 있는 반면, 후자는 탄탄대로인 인생을 살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두 사람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르지 않음'은 그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나의 아저씨」는 그 지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훈이 재직 중인 삼안E&C에 파견직으로 일하는 지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채를 어떻게든 청산하기 위해 진정한 본인의 모습을 마음 깊숙한 곳에 봉인하고, 그저 일한다. 기계처럼 일한다. 밤낮 없이 알바도 뛴다. 사람들이 본인에게 뭐라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지안의 행동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안에게는 긍정적인 변화도, 결국 잘 살아야 쉬운 게 아닌가 싶다. 지안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나의 아저씨」5화
이때 지안 앞에 동훈이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 아저씨는 돈도 많이 버는 것 같은데, 지안이 느끼기에 이 아저씨는 너무 불행하다. 꼭 자기 같다. 잘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쉽지만, 세상에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좋은 사람으로 변화하려다가도 과거의 상처가 멍에처럼 남아 이따금씩 통증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사실상 포기한 것만 같은, 지안과 동훈은 삶에 지쳐버린 서로를 확인한다.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동훈이다. 이는 결코 계획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지안의 언저리에서 실존했을 뿐이고, 이 실존의 자극으로 말미암아 지안은 거듭남으로 반응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반응의 과정에서 전달된 지안의 실존은 도리어 동훈을 거듭나게 만든다. 이 같은 일련의 비계획적인 랠리를 통해 그들은 '교육'되는 것이다.
상처, 그리고 통증. 그 어떤 약으로도 치유되지 않을 그들의 상처와 통증은 오히려, 아주 일상적인 방식으로 치유된다. 믿음, 위로, 응원의 일상. 일상들은 하나둘씩 모여 '삶'을 구성한다. 그리고 동훈이 지안에게 제공한 이러한 일상적인 방식은 가장 교육적인 것이라는 것을, 나는 설명하고 싶다. 앞으로 「나의 아저씨」에 대한 나의 글은, 이 일상적인 방식에 대해 논하는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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