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다
오랜만에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전에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부부가 함께 자주 만나곤 했는데, 우리가 시골로 내려온 이후로는 한동안 연락이 뜸했었다. 그 친구는 앞으로 몇 년만 더 일하고 은퇴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오래전에 이야기 한 적 있는 동유럽 여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과연 언제 코로나가 잠잠해 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 우리 집은 한가하게 해외여행을 다닐 형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예전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그에게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 가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골로 내려가더니만, 이제는 궁핍하게 살고 있다고 자인하는 것 같았으니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온다는 것은 분명히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절박했고, 직장생활을 계속하기에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또 마음은 이미 도시를 떠나 있었으니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시골로 간다고 했다. 하지만 직장이란 게 평생을 다닌다고 해도 퇴직 후의 삶을 보장해 줄만큼 충분한 돈을 모으기는 어려운 곳이다. 그것이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공통된 현실이고, 나 역시 그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그래도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예 빈 손으로 시작하자는 것도 아니었고, 또 아직 젊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농사지어 조금만 보태면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을 거야. 또 시골로 가면 돈 쓸 일도 별로 없대!" 식구들 모아 놓고, 그래도 희망을 주겠다고 한 나의 이 비장한 발언에 아내는 황당해했다.
처음에는 식구들의 반대도 만만치가 않았었다. 익숙했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시골로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시골로 오기까지에는 장시간에 걸친, 나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협박과 회유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사표를 내고 식구들과 함께 시골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귀촌하고 처음 1~2년 간은 예전의 직장 동료들도 자주 우리 집을 찾아왔던 것 같다. 아마 그들도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 내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자주 왔던 게 틀림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방문은 점점 뜸해졌다. 그들은 귀촌을 꿈으로 간직한 채 평소처럼 바쁜 도시로 되돌아갔고, 나는 시골에서 내 나름대로의 삶을 찾아야 했다.
시골에서 살아온 지난 10여 년의 시간은 나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시골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다시 도시로 되돌아 가지도 않았으며, 지금은 마을의 일원이 되어 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 집에는 자그마한 사과 과수원이 있고, 날마다 신선한 채소를 공급해 주는 텃밭도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설령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싫어서 시골로 내려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내가 예전에 알던 많은 사람들은 서서히 멀어져 갔고, 시골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며칠 전에는 옆집 형님이 옥수수를 따 오셨다. 해마다 가을이면 수확한 사과를 동네분들에게 나누어 드리니, 그분들도 무언가를 우리에게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내 주위에는 직접 농사지은 거라며 해마다 쌀을 주시는 분도 계시고, 버섯을, 그리고 꿀을 주시는 분도 계시다.
마을분들과 이따금 식사도 같이 한다. 기껏 먹는 음식이라야 짬뽕이나 냉면 정도이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즐겁다. 우리 부부가 동네에서 제일 젊어, 매번 막내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정말로 괜찮다.
제일 중요한 건강도 좋아졌다. 예전에는 봄이면 꽃가루, 여름이면 에어컨 바람, 그리고 가을이면 기온차에 의한 비염을 달고 살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다 없어졌다. 또 매일 몸 쓰는 일만 하다 보니 힘도 세어졌다.
이따금 사람들은 시골에서 심심할 텐데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고 묻는다. 시골생활이 심심하다고? 내 일상을 돌아보면 한시도 심심할 틈이 없다.
때가 되면 땅을 일구고 농작물을 가꾼다. 풀도 깎아주어야 한다. 장마가 긴 요즘에는 잡초들만 신이나 있다. 무 배추 등 김장채소 심을 때도 다가오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수확할 시기가 다가와 있고,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땅은 공짜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며 내가 노력한 만큼만 되돌려 준다.
목공 작업도 하고 있다. 나무로 비닐하우스도 만들고 창고도 만들었다. 주위분들께 테이블이나 서랍장, 작은 소품들을 만들어 드린 것도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니, 뒤늦게 배운 목공을 꽤나 유용하게 써먹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은 내 목공 기술을 제일 부러워한다.
그렇게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옛 친구의 전화는 그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을 들추어냈다. 전화를 해 준 것까지는 고마운데, 이제 와서 갑자기 해외여행이라니... 내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불쑥 말을 꺼낸 친구가 조금은 얄밉기도 했다.
처음 시골로 내려올 때 아내에게 일 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고, 또 자동차도 따로 한대 사주겠다고 공약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공염불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자동차도 집에 있던 차를 아내에게 가지라고 주었다. 난 가끔씩 얻어 타기만 할 거고. 현실 적응이 빠른 아내는 더 이상 경제적인 문제로 바가지를 긁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경제적인 궁핍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건 사실이다. 이따금 지인들이 우리 부부를 식사에 초대하곤 한다. 하지만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을 얻어먹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렇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경제활동을 하는 그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과연 시골로 오기로 한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예전에 누렸던 풍요로움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와 같이 설사 내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지금과 같은 길을 선택했을 것 같다. 인생이란 게 원래 정답이 없는 거라고, 어떤 삶을 살든 그것도 중요한 내 인생의 한 부분이니까 말이다.
언젠가 코로나가 조용해질 때, 그 친구네와 함께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예 가지 못한다고 말을 할지, 아니면 없는 주변머리에 그래도 비용이 적게 드는 어느 가까운 곳에라도 다녀오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간에, 적어도 나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내 형편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빈곤이 자랑은 아니라지만 그것 때문에 상실감을 느끼며 살아서도 안된다. 10여 년 전 나는 분명히 나에게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인생이 된 지금, 나는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고, 또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좌절할 필요도 없었다.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창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오랜만에 아내와 드라이브나 하러 가야겠다. 아내와 나는 이슬비가 내리는 한적한 시골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슬비에 더욱 촉촉해진, 온 세상이 온통 초록빛인 시골길을 드라이브할 때면 우리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런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