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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앳지 Mar 27. 2024

셀페시아에 가다

1화 무아지경만이 있는...


내가 사람처럼 꿈을 꾸고 희망을 품었던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나는 펠시아에서 살고 있는 길을 잃은 영혼이다.


천국과 지옥 그 사이...


어디쯤에서 방치되어 있는


갈 길 잃은 미아처럼 떠도는 방랑객인,

사람이 아닌 혼령이다.


내가 죽던 날 아무도 날 위해 슬피 울지 않았다.


이후 나는 보았다.


내 눈은 감자칼 같은 날카로운 메스로 도려졌고,

내 장기는 일일이 분해되었고,

뼈와 피부 조직은 갈기갈기 찢긴 형체로


다급해 보이는 십여 명이 넘는 사람에게

골고루 그대로 기증되었다.


내가 살아온 28년은 바람처럼 흩어져 버렸다.


살아온 자의 온기만이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어르신 신체 어딘가로

흡수되었을 뿐...



그들에게 살아오며 나의 울분과 아픔이 담긴 피부조직부터 장기 그리고 각막 하나하나까지 주고 가는 게 미안하기만 하다.


난생처음 보는 그들만이 나를 위해 울고 있다.


날 위해 기도해 주고 있었다.


손 모아 반듯하게... 그들은 셀펠시아로 날 보내기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각자의 병상에 누워...


내게로 에너지를 모아주었다.


'님~  감사합니다. 천국에선 아프지 마세요.'




그들의 눈물 속 기도를 으며


나 또한 모두가 소원하는 천국,

셀펠시로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지 못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내 혈육인 형제자매

그리고 그 이전으로 돌아가...


나의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심지어

나와 연결된 여러 육친들의 죗값으로 말미암아


최종적으로 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원소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2021년 1월 1일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생을 마감했다.


더욱이 아무리 대대로 덕을 쌓은 가문의 자손이라 해도


스스로 생을 단죄한 죄인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법은 더욱 혼돈스럽고

복잡하다고 전해 들었다.


그러나 셀펠시아에 전입하고자 희망하는 혼들을 지도관리하는 요정 카이는

내 생과 사의 지난 시간들을 영안으로 한참을

돌려 보더니,


단순한 자살로 의지박약으로 볼 수 없다며,


당분간, 보류로 처리해 놓을 테니,

그간에 내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천국도 아니요.

지옥도 아니요.

현생도 아닌

그 사이에 걸쳐 있는 아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온 시간들 속 숨은 그림자를 찾아오라고 하였다.


나는 당황해서 카이에게 물었다.


"숨은 그림자요?


그런 게 어딨어요...


난 한낮 그림자도 볼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왔다고요?


내가 어디서 그림자를 그것도 숨은 그림자를 찾냐고요?"


나는 지나온 현생에서 

언제나 심장이 쿵~ 내려 으며 살아왔다

 시간들이 한줄기 미약한 빛으로 지나가 버린다


육체를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너무나 가볍다.

날개가 달린 듯 자꾸만 붕붕 날아오른다.


엔진출력이 대단했던 살아생전 그 아이의 차처럼

어디든 나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아이를 상상하자 내 몸은 시커먼 습으로 가득 찬 구름이 되어 지상으로 뿌려대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치지 않는 빗줄기가 되어 쏟아져 내리던 비는 그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이고 그리움이고,

서러운 감정같은 거였다.


나의 혼은 형태가 없다.

그렇지만 다채로운 빛깔들로 표현되기도 하고,

자연의 일부로 흡수되기도 하며

천둥도 번개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마치 신이 된 것만 같다.


나의 지난 시간 속 숨은 그림자를 찾아와야 한다...


그 기억에 잠시 머무는 동안,

다시 내 몸은 까만 유리병에 갇혀

얼룩덜룩한 형체를 드러내는 어떤 물질이 되고 만다.


카이가 소리 지른다.


현설 님 정신 차리세요.


당신은 혼령이지만, 아직 당신의 노선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간에 당신은 펠시아 사람으로 인정하려 해요.


펠시아 사람은 특별한 능력이 부여됩니다.


그들에겐 모두 숨은 그림자가 있어요.

그 그림자를 찾아올 때까지, 우리가 드리는


도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찾아오세요.


그림자를 찾아서 오시면, 심사 후 셀펠시아로 갈 수 있는

티켓을 마련할 수 있어요.


하나 셀펠시아로 가는 티켓을 마련한다고 해도,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발견되지 않았던,

당신의 용납될 수 없는 악행이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당신은 셀펠시아와 반대방향에 있는 자살귀들의 섬 에드린으로 인도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나는 숨이 멎을 것 같다.


카이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있는 중에,


'내 뒤로 하얀 손이 내 어깨를 감싼다.


따스하다... 부드럽다...


스르륵 잠이 오는 것만 같다.'


죽고 나선 무게감도 피곤함도 배고픔도 없다.

무아지경 상태만이 지속되고 있다.


 어떤 감정도 없다.


그냥 그 상태이다.


어떤 상황에 반응하는 것도 희로애락도 없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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