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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도르 Apr 28. 2021

내 이름 넉자 되뇌며

어제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혼자 집에 있었다. 갑자기 방 밖에서 나는 득득 긁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거실로 나갔다. 콩이가 바닥에 머리를 거꾸로 박고 입천장을 양발로 긁고 있었다. 마치 땅을 파는 것처럼 도저히 본인의 입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세기로 긁어댔다. 황급히 멈추게 하고 나서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피로 붉게 물든 입 주변과 발이었다. 모든 것이 엑소시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콩아!” 그렇게 놀란 마음으로 강아지를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콩이가 아플 땐 난 항상 놀란 어머니 옆에서 차분히 서서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어제처럼 피범벅인 모습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혹여나 날카로운 것을 입에 넣은 것은 아닌지 안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콩이를 진정시키고 주변에 계시던 어머니께 전화하였다. 전화를 마치고 다시 살펴보았다. 불편한지 혀를 계속 움직였고 입에선 쩍쩍 소리가 났다.  와중에 시키는 대로 고이 앉아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생각지 못한 눈물이 갑자기 쏟아졌다. 당장이라도 잃어버릴  같았다.  앞의 콩이가 사라질  같았다. “콩아  그래라는  밖에   없었다. 비참했다.

그렇게 병원을 데리고 가서 진통제 맞고 왔지만 한밤중에 약발이 떨어졌는지 저녁과 같은 행동을 하길래 다시 24시간동안 하는  병원에 갔다. 14 노견의 오래된 이빨이 문제였다. 추가로  검사에서 최근 약해져 있던 심장도  나빠졌다고 했다. 바로 발치와 스케일링을 위한 수술을 다음 날로 잡았다. 당장  문제는 아니었기에 다행이었다. 하지만 수술해야  이빨보다 문제는 마취였다. 노견이라 마취에서 깨지 못할  있기에 원래부터 스케일링을  년째 미루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나빠진 심장에 무리가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잘못되면 인사도  하고 보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경우를 생각해 평소에 정을 붙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나 개는 , 사람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14년을 거리를   살았다. “오빠는 콩이  챙기지도 않는데 콩이는  오빠를 제일 좋아해?” 가족이 유행어처럼 매번 하는 말이었다. 정말 그랬다. 사실이었다.  바라보는 무조건적인 콩이의 선명한 눈빛에 비하면 나의 눈빛은 흐리멍덩한 동태 눈깔이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보다 콩이에게 정을 많이 주었던 모양이었다. 다음  저녁,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깼다는 연락이  때까지 밥도 먹지 못했고 과제, 집안일  해야  것들을 아무것도   없었다. 아침부터 나를 힘들게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배앓이는 오후 5 어머니의 전화와 함께 멎었다.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신을 찾았다.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초등학생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성당에서 받은 세례명  자뿐이었다.  이후로 성당에  적을 세려고 하면  손도 남아돌았다. 비겁했다. 절박함을 핑계 삼아 본인이 필요할 때만 찾아가 도움을 구하는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했다. 허나 어쩔  없었다. 어머니는 콩이 없이  사신다. 지난 14년간 어머니의 행복이자 분신이며 모든 것이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내가 정을 붙이지 않으려 했다면 어머니는   있는 모든 정을 주시는 분이었다. 그녀를 위해 가장 되기 싫어한 부류의 사람이 되기로 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래 왔다. 매번 내가 당신을 찾은 순간은  지켜주길 원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을 때였다. 나의 부탁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자주 원망하고 증오하며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위한 부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염치가 있으니. 하지만 이럴 때는 당신에게 구걸한다. 이런 내가 당신은 지겹지 않은가, 경멸스럽지 않은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제까지 당신이 이런 나의 부탁을 들어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감사를 전할뿐이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존재까지 사랑하는 것인가

수술을  마치고 집에 왔다. 콩이는 마취가  깼는지 몸에 힘이 없었다. 9개나 발치를 했다. 앞으로 심장약을 계속 먹어야  수도 있다. 일단 당장은 마취 부작용으로 폐부종이   있으니 며칠 동안 유심히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하여 가족이 퇴근하기 전까지 종일 옆에 붙어  쉬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내일부터 내가  일이 되었다. 그래도 나머지는  건강하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이렇게 전쟁 같은 이틀이 끝났고 다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둘이 집에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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