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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도르 Jan 26. 2022

[불면01] 오래된.

요즘 오래된 불면증이 다시 심해졌다. 오늘은 새벽 1시쯤 눈을 감았지만 2시 반에 일어났다. 겨우 한 시간 반을 잤지만 잠이 더는 오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감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새해가 된 이후 새로운 일을 다짐한  나처럼 불면증도 새로운 패턴을 계획한 것 같다. 잠은 예전보다 일찍 들었지만 그만큼 일찍 깼다. 1월 초부터 그러더니 월말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 작심삼일 없이 꾸준하다. 젠장, 부지런한 녀석이다. 이런 건 본받아야 할 것 같다.  


  동안 아침잠 없는 할아버지처럼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일어나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가족이 일어나 움직이면 마치 나도 그때 일어난  마냥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글을 쓰려는 것을 보니 그것도 이제 지겨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 전까지 시간을 죽이는 것과 일어나서 시간을 죽이는 것은 심리적으로 다르게 다가온 것도 있었다. 전자는 하루의 끝에 온전히 나의 자유를 느끼는 과정처럼 다가왔다면 후자는 자유를 얻었으나 가만히 있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낭비하고 포기하는 과정인듯 느껴졌다.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이렇게 아무 말이나 주절주절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원래 처음 쓰려던 것은 새해에 시작한 운동이나, 이번에 다녀온 전시였다. 하지만 가장  알면서도 나에게 가장 친근한 존재, 별생각 없이도  것이 많은 것은 어린 시절부터   넘게 함께하고 있는 불면이었고 결국  글을 바치게 되었다.  


그는 그동안 어둠을 새하얗게 덮는 눈처럼 나의 밤에 선물이 되어 내렸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에 거무튀튀하게 녹아 질퍽이며 나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결정할 것이 있을 때는 그가 나에게 선사한 시간이 중요한 결정들을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할 수 있는 혜택이면서도 고민의 양도 늘어나는 페널티가 되었다. 또 불면의 시간 속에서 어떠한 것은 잊히며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잊혔다고 생각한 것들은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나의 방은 기억의 교차로였다. 가장 나다운 시간이면서 나밖에 없는 시간. 자유이자 외로움. 그가 지난 세월 동안 나에게 선사한 것들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그가 조금 달라졌으니 나도 조금 달라져여겠단 생각이 든다. 왜 그가 달라졌는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자. 물론 그가 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그가 답을 줄 때까지. 너무 뚝 끊기는 것 같지만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음 글을 기약하며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현재 시각 7시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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