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감포의 유력자는 당시 일본어 신문의 광고란에 잘 드러난다. 새해가 되면 유지들은 새해 인사를 신문 광고에 실었다. 「조선신문」 1928.1.3, 1932.1.12, 1934.1.12일 자에 감포 유지들의 새해 인사 광고가 실려 있다. 1928년 새해에는 도이구치(渡井口, 스와키(洲脇), 이즈쓰(井筒), 마스모토(桝本), 산요(山陽)여관, 공의(公醫: 의료기관이 부족한 산간벽지에 배치한 의사.경상북도는 1928년부터 실시) 에이하라(頴原), 우편국장 미야모토(宮本), 공립보통고등소학교 직원 일동, 공의 박원섭(朴原涉)의 이름이 보인다. 1932년 새해 인사에는 도이구치, 다쓰노(龍野), 야마자키(山崎), 미즈시마(水島), 김화석(金和石, 감포금융조합원)의 이름이 보인다. 1934년 새해 인사에는 도이구치, 다쓰노 감포어업조합 직원 일동(조합장 다쓰노, 이사 모모카와(桃川), 마스모토(桝本) 상점의 이름이 보인다. 반복적으로 보이는 몇몇 이름이 감포의 초기 대표적인 일본인 정착자들일 것이다.
이는 일본인이 만든 지도 「대일본직업명세도 제194호 신용안내 조선남부」 뒷면에 실린 업자들의 면면과 비교해 보아도 분명하다. 이 지도 앞면에는 감포의 일본인 거주지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고. 대표적 사찰, 관공서, 사진도 삽입되어 있다. 뒷면에는 '신용안내'라는 말대로 감포에 거주하며 세금을 납부하는 대표적인 상공인들의 상호명과 전화번호, 주소를 기재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3화), 이 지도는 납세액을 기준으로 '신용 있는' 상공업자의 점포 주소를 남김없이 기재하고, 명소, 고적, 사찰과 신사, 관공서, 학교, 은행, 회사, 공장, 병의원, 상점 및 명망가는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다.(木谷佐一(1937) 「대일본 직업별 명세도의 특색 및 효용」) 따라서 이 지도에 기재된 상공업자들의 정보는 직업별 전화번호부도 되는 신뢰할만한 정보라 할 수 있고, 당시 대표적인 감포의 일본인 상공인들이라 할 수 있다.
아래 표는 1934년판 「대일본직업명세도」 뒷면에는 실린 상호를 기초로 해서 감포읍의 상호만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지도 전체는 감포 외에 부산, 구룡포, 장생포, 방어진, 밀양, 마산 조선 남부 대표적 일본인 거주지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는 감포에 대한 정보만 발췌하였다. 표에서 <구분>은 원 지도에서 분류한 항목으로 직업별로 나뉘어져 있다.
다음으로 <색인>은 지도 앞면에서 찾아보기 쉽게 한 것이다. 예를 들어 '四チ' 는 앞면의 세로 4번에 가로チ칸에 감포학교조합이 있다는 의미이다. <필자주>는 필자가 찾아서 보완한 내용이다. '사진'으로 기재된 것은 앞면에 사진이 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감포심상고등소학교는 지도에 사진이 들어있다는 의미이다.
<대일본직업별명세도>에 실린 1930년대 감포에 거주한 일본인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일본인 학교조합과 학교가 1개소, 일본인 절이 4개소나 있고, 신사가 1개소 있다.
먼저 규모가 큰 업소로 감포전기주식회사 1개소, 철공소 2개소, 조선소가 2개소 있다. 어구 및 선어업 관련 7개소, 해산물 가공, 통조림업체 5개소, 수산 선어상이 7개소나 있어, 항구답게 어업 관련 업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본인 의원, 목욕탕, 담배 가게, 약국, 식품 가게, 신문사 지국, 제재소, 옷가게, 양조장, 해운업체, 자동차업체 등이 있다.
기타 잡화상 4개소, 요리, 음식점이 6개소, 여관도 2개소나 있다. 1920년대부터 감포는 삼치, 고등어, 정어리 순으로 회유성 어군들이 대량으로 어획되어, 1930년대 전성기에는 항구에 일본인들이 모여들고 돈이 넘쳐나고 큰 유흥가가 형성되었다. 음식점에서 일할 여성을 구하기 위해 부산 왕복을 빈번하게 하였다는 기사도 등장한다. (「부산일보」1933.11.09.)
당시 감포는 항구에 바싹 붙은 좁은 토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유흥업소와 상업 시설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는 회유성 어업의 활황으로 몰려든 어부들이 쉴 수 있는 목욕탕, 이발관, 당구장, 술집, 음식점, 요정 등이 생겨나 어촌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김수희, 2005:173-186) 지금도 방어진, 감포, 구룡포 등지에서는 화려했던 일제 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는 이유이다. 경주시에서 펴낸 자료 <경주시 감포읍 적산가옥>이 있다. <대일본직업별명세도>에 기재된 일본인 가옥 중에서 현재도 남아있는 주택들의 사진과 간단한 설명을 해놓아서, 현재 잔존해 있는 모습과 이 지도를 병행해서 본다면 식민지시대 일본인들의 생활상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지도에 등장하는 일본인 인명 중에 지도 앞면에 점포 사진이 선전된 인명을 감포의 일본인 유력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신상을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 보면, 1930년대 감포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 편부터는 직업별 색인 분류대로 등장하는 일본인 유력자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