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Dec 26. 2023

홀로 서고, 걷고 뛰기

글 올리브

일에 대한 특별한 가치관이 없었을 때, 우선 전공을 살려 일을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니 자연스레 교정을 밟으며 출퇴근하는 교사의 모습이 로망이 되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운 좋게 기간제 교사로 초등학교에 딸린 병설 유치원이 내 첫 직장이었다. 사계절을 학교로 출퇴근하면서 나의 로망은 충분히 충족됐다. 그런데 로망이 충족되고 나니 나는 교사를 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 교실, 내 반, 나의 첫 제자들이 생긴 것도 한 해가 지날수록 성취감을 주지 못했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교사로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런 고민을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았더니 내가 기간제여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진짜 임용이 돼서 정규직이 되면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임용에 몰입했다. 그러나 이 또한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코로나로 아이들은 등원이 중지되었고 교사는 학생들이 없으니 빈 교실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그때 나는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버킷리스트에 적혀만 있던 책 쓰는 일. 전부터 모아 온 글과 그림 사진 자료가 있었고 상황적으로 맞아떨어져서 독립출판을 했다. 그러면서 동료 선생님들께 책을 나눠드렸는데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내 모습과 교사의 일을 할 때의 내 모습이 비교되었을 것이다. 나의 짝꿍 선생님은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시기를,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반짝임은 따라갈 수 없지만 교사로서 열정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당시는 그 말씀이 너무 서운하면서도 이 직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직업이 있지만 특히 교사라는 직업은 일반 직장과 다르다고 그들은 말한다. 교직에 있는 대부분 선생님께서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로 여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모든 교사가 사명감만으로 일하지 않는다. 이 집단은 교사를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교사도 꿈을 키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내가 답답한 마음과 풀리지 않는 성취욕이 생겼던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자아실현을 할 때 성취감이 더욱 큰 사람이었다. 첫 직장 퇴사 이후에 나는 임용을 접고 꿈을 찾겠다고 나름의 갭이어를 가졌다. 출판학교도 도전해 보고 포트폴리오도 만들면서 출판사에 꿈을 가졌다. 그러나 마음처럼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출판학교도 출판사도 나를 면접까지만 봐줬고 최종의 자리에선 불러주지 않았다. 현실을 깨닫고 나는 다시 임용 판으로 뛰어들었다. 임용도 잘 풀리지 않자, 교육공무직이라는 정규직으로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정규직의 자리면 뭐가 다를 것이라던 주변의 말처럼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교사가 맞지 않는다는 확인 사살만 얻었다.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내가 펼칠 수 있는 꿈은 한계가 있었다. 물론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하루하루 소중함도 있었지만, 체력적으로 혼자 18명의 아이를 보는 일은 힘에 부쳤고 스스로를 돌볼 시간도 없이 8시간을 정신없이 보내는 나날들이 점점 괴로웠다.


나는 역시나 책을 매만지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퇴사 후 좋아하는 일을 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좀 더 수료하기 쉬운 출판학교에 갔다. 새로운 배움을 맞보면서 이제야 숨이 쉬어졌다. 소속감을 벗어던지자 두려웠지만 내 힘으로 기는 것부터 배우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일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이었다. 두 다리를 가지고 홀로 설 수 있는 직업 말이다.


전부터 준비해 왔던 출판사에 대한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에 출판학교를 수료하고 A 출판사로 조기 취업했다. 완벽하게 꿈꾸던 일은 아니었지만, 꽤 적합한 회사였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 정말 좋았다. 나만의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고 회사의 색깔을 맞추기도 하면서 작업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책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만족스러웠다. 직업을 사랑하는 일은 나의 첫 번째 가치관이다. 이것은 임금체불 이후 회사를 나온 지금도 변함없다. 내가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가치 있는 책을 만들 때 나는 그 일을 정말 사랑한다. 그러나 작은 출판사의 현실을 겪고 나서야 직업이 먹고사는 일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는 두 번째 가치관이 생겼다. 좋아하는 그 일도 지속할 수 없으면 소용없다. 지속하게 하는 힘은 먹고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회사가 무사히 굴러갈 만한 안전한 구동력을 가졌는지는 너무 중요한 요소다.


아직은 성장 욕구가 큰 중고 신입이라서 가진 것에 비해 포부가 큰 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치관은 또 변하겠지만 어렵게 출판사로 돌아온 만큼 오래도록 첫 번째 가치관이 흔들리지 않으면 좋겠다. 온전히 내 힘으로 서는 것을 넘어서서 걷고 뛸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배우고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이전 24화 싸고 싶을 때 쌀 수 있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