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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되니 보이는 것

독자의 순수성은 어디로 갔을까.

by 하늘

독자의 순수성을 가졌을 때다. 책방에 들어서면 잔잔한 재즈 음악도 내 취향이었고, 책방지기의 감성으로 꾸며진 구석구석마다 참 매력적이었다. 그분들이 권하는 책은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느낌이었다. 구매율이라는 데이터 베이스가 아닌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권해주는 한 권의 책. 그런 책들을 사서 읽어보면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그것도 무척 애정 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작가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알게 된 좋은 책들 작가들도 점차 생겨났다. 그것이 책을 내기 이전의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젠 작가로 편집자로 디자이너로 마케터의 극히 일부 역할을 경험해서인지 자꾸만 다른 것들이 보인다. 이 책은 표지를 이렇게 디자인했구나. 요즘 표지 트렌드는 이런가 보다. 후가공이 예쁜 걸 보니 비쌌겠다. 날개 없는 책이네. 날개 안쪽은 뭐로 구생했지? 부터 시작해서 내지는 모조지를 사용했네 속지는 이런 걸 입혔구나. 페이지 표시는 이렇게도 할 수 있네 목차 구성이 독특하다. 이 글꼴은 뭘까. 그림 사진은 가득 채우니까 보기 좋다. 맨 뒷장으로 가서 언제 출간했고 몇 쇄 인쇄를 거쳤고 몇 부를 뽑았을까 매대에 올라가기까지 얼마 동안 계약했을까 그런 것까지 꼼꼼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궁금증을 바탕으로 분석을 하고 있다.


때론 어째서 이 가격에 이런 책을 만들었단 말인가 한탄하기도 하고 나라면 이렇게 만들었을 거란 훈수도 두고 있다. 잘 알지 못해서 쉽게 판단해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알아서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책을 그저 내용 정도로 작가의 유명세로 판단했던 것보단 더 많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반대로 내 책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겁이 나기도 한다.


사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어떤 우여곡절과 전문가의 애정 어린 손길이 필요했을지 나는 모른다. 그저 완성되어 책등이나 표지 앞면을 보이고 누워있는 그 책을 쓱 훑어보는 게 전부니까. 많은 피와 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나왔을 것을 생각하니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의 순수성은 이전보다 시들해졌지만 책방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곧 회복되곤 한다. 오로지 책과 나 둘 사이에서 교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마치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부끄러움에 눈이 떴던 것처럼. 앞으로 내가 보다 전문적인 스킬을 배우게 된다면 내 책의 허점과 실수투성이가 그대로 보이겠지. 하지만 지금도 재밌다. 전혀 모르던 부분에 눈을 떴다는 사실이. 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신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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