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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작가이고 싶어서

직업은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by 하늘

나는 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이름 뒤에 달고 살았다. 내 이름이 선생님으로 불리는 동안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란 호칭 대신 다른 것이 대신할 거란 생각을 못해봤다. 그런데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는 분이 생겼다.


"하늘 작가님--."


그 말이 듣기 좋았다. 나의 정체성이 바뀌는 순간의 짜릿함 같은 것이었다.

백 페이지도 채 안 되는 손바닥만한 작은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불린 호칭이었다.

작은 종이뭉치가 한순간에 나를 바꾸다니.


유치원에 갔더니 나더러 작가 선생님이란다. 그런 말도 쑥스럽긴 했지만 특별하게 들려서 내심 좋았다.


사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면 작가가 될 수 있다.

대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오랜 여운을 줄 수 있는 건 정말 소수라는 것이지.


오래전부터 존경하는 김이나 작사가의 인터뷰는 여전히 내가 잡을 수 있는 희망의 끈이다.

직업은 현실이라며 직언에 직격타를 날렸다. 지금의 김이나 작사가가 있기까지 그녀는 음악과 관련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좋아하는 음악을 곁에 두고 맴돌면서도 현실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작사가로 자립할 수 있을 시기가 왔을 때야 비로소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꿈을 위해 무모해진 적은 없다.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졸업 직후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적인 독립을 최대한 빨리 이뤘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내세울만한 점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었기에, 작사가가 되겠다고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상(詩想)’을 떠올리는 데 몰입하는 등의 행동은 해본 적이 없다. <김이나의 작사 법-12~13쪽 발췌>


나는 간절함과 현실 인식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한쪽 눈을 뜨고 걷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알아보는 것도, 잡는 것도 평소의 간절함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그러니 부디 순간 불타고 마는 간절함에 속지 말기를. <김이나의 작사 법-15~16쪽 발췌>

인터뷰 전문 출처:http://ch.yes24.com/Article/View/27973



내가 작가 선생님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완전히 떼어내지 못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경제 부분에서 기대를 내려놓게 된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현실이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장점도 있겠지만 업을 삼는 건 결국 돈을 번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 생계가 유지되고 다른 미래를 위해 투자도 할 수 있다. 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정말 고민이 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땡전 한 푼 없이 떼를 쓸 순 없는 노릇이다.


독립출판을 작게나마 경험하면서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그것을 발견한 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

현재 상태에서 이것으로는 업을 삼을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말 벌이로서는 형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유명 작가도 아니고 작품 달랑 한 개로 벌이를 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지.


작가가 되기란 빼어난 문장력과 번쩍이는 아이디어만 가졌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SNS의 파급력이 워낙 커서 조회수, 팔로워, 구독자와 같은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 같다. 내가 대형 출판사의 대표라고 해도 당연하다.

독립출판으로 데뷔했다가 출판사의 눈에 띄어 기성 출판을 한 작가들의 성공사례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내게는 마치 연습생이 길거리 캐스팅당한 사례만큼 대단해 보인다.

그런 대단한 기회가 내게 없으라는 법은 없지만 백번 양보해서 있다고 해도 마냥 기다릴 순 없다.


그래서 내가 결정한 것은 현실과 타협하여 작가 선생님으로 사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좋아하는 일이 직업으로서 안정적일 때까지만 나의 전공을 살리려고 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닐 테니 최선을 다해 나의 안정된 삶의 기반을 다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좋아하는 일에도 안정감 있게 도전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이 어디냐, 취미로 즐길 수 있어 다행이란 얘기도 종종 듣는다. 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직업으로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성취라는 게 또 있다.

어쩌면 작가가 아닌 북디자이너나 편집자처럼 다른 작가의 글을 매만지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을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먼 훗날 일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떼어내는 그날까지 나의 호칭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면서 나라는 사람이 단단해지도록 해야겠다. 그 미래가 너무 멀리 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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