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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낙원도

단편소설

낙원도에 갔다 돌아오는 길. 지영이가 마중을 나왔다. 


“이번엔 어땠어? 다은이는 잘 지내?” 


“그렇지. 그곳에선 아프지 않으니까. 항상 행복해 보여. 좋아하는 것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 사랑하는 이들과 부족함 없이 지내. 관찰하고 있으면 가끔 눈이 마주쳐. 그럼 다은인 물어. 언니는 누구냐고. 난 늘 그렇듯. 여기서 챙겨간 제일 알록달록한 사탕과 말랑한 젤리를 건네지. 다은인 괜찮다고 거절해. 낙원도에는 더 좋은 게 많다고. 오히려 언니 챙겨가라고 손을 잡아끌지.”


“다은이가 다른 말은 안 했어?”


“안 왔으면 좋겠다고. 그곳에선 자신이 정하는 나이에 오래 머무를 수 있거든. 가족을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나를 볼 때면 친근감이 드는데 아프대. 자신이 낙원도가 아닌 어딘가에서도 존재했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거야. 그 말을 듣는데 나도 아프더라. 다은이는 아무것도 기억하면 안 되는데, 나란 이방인이 무언가를 기억하겠다고 낙원도를 자꾸 방문하는 게 다은이한테 고통일까 봐.”


“뭐라 할 말이 없네. 네가 어떤 마음으로 낙원도에 가는지 아니까. 생각 잘해보고 결정해.”


지영이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고 라디오를 켠 뒤 시동을 걸었다. 


『9시 뉴스입니다. 해연시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사건 피의자인 다은이 이모와 이모부에 대한 첫 공판이 이뤄졌습니다. 검찰은 이모와 이모부에게 살인죄를 구형하였으나 변호인은 고의성이 없었다며 아동학대치사를 주장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오늘 결론을 내지 못하고 추후 공판을 다시 열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생계를 핑계로 자녀를 맡겼으나 아이가 빙의되었다는 자신의 동생에 주장에 퇴마의식이 필요하다며 매질을 할 나뭇가지를 구해준 친모에게도 방임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중략)…. 2020년 정연이 사건 이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은이는 그 누구에게도 살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이모집 욕조에서 익사하였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진 채로 물고문을 당하던 다은이의 핸드폰엔 친모의 전화번호가 있었으나, 수차례 반복된 고통 속에서도 다은이는 한 번도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9시 뉴스를 마치겠습니다.』


클로징 멘트를 하던 앵커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황급히 뉴스는 마무리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다치고 있을까? 몇 명이 더 낙원도에 가게 될까?”


지영이가 깊고 고요한 침묵을 깨고 말했다. 


“아이들에겐 지금과 같은 어둠이 사라지고 아침이 오는 시간의 흐름조차 두려움의 크기만큼 큰 괴물처럼 느끼겠지. 지옥은 계속될 테니까. 그러니까, 다은이도 내가 오는 게 싫은 거야. 내 얼굴에서 시간의 순행성을 읽을 테니까. 지영아, 우리 친구들 아직 살아있을까?”


“누구?”


“고등학교 때 우리 친구, 예은이와 은희.”


“아… 예은이는 그래, 아빠가 체육관 관장이던. 아빠 핸드폰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녹음 파일을 지웠는데, 그게 하필 아빠가 동업자한테 돈을 받을 수 있었던 증거였지. 예은이도 애가 참 단단했어. 아빠한테 야구 방망이로 몇십 대를 맞아서 절뚝이면서 등교했으면서 울지도 않고 말하더라. 그리고 은희. 은희는 엄마가 도망갔었지. 은희가 그때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위험할 뻔했던 거 네가 뜯어말렸잖아. 한창 갈피를 못 잡고 술 마시다가 아빠한테 발로 배를 세게 차였다 했나? 차인 거 말고도 그날 반 죽을 뻔하다 할머니가 친척 오빠를 불러서 살았다지? 너도 그때 참 웃겼어. 술 먹는 은희 줍겠다고 과외받다가 뛰쳐나가고. 예은이 위해 기도하자고 하고.”


“내가 그런다고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물리적 상처는 아물었겠지만… 다은이 이모란 사람 말이야. 자기도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감형을 주장했대. 새아빠가 자기 엄마를 죽여서 논두렁에 버렸으니 자신도 벗어날 수 없는 그늘 같은 거였단 말로 선처를 바란대. 자기의 친자식은 털끝도 건드리지 않았으면서. 외롭고 무책임한 가족은 무엇을 만들어내는 걸까? 불우한 환경은 면죄부가 되는 걸까? 다은이 사건 다루던 패널이 그러더라. 『도망가지, 다은아.』 근데 9살짜리 여자애가 어디로 도망가. 도망가면 성인까지 무사히 살 수 있는 거야? 무력해. 가해자 엄벌받아야지. 근데 한 발짝도 안 변했어. 다은인 도망칠 수 없었고. 안전할 수 없었고. 또 죽었어.” 


끝내 눈물이 나버렸다.


지영이는 기어를 잡고 있는 손을 풀어 나의 손을 잡아주면서 말했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청원을 작성하고 기억하려고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네가 다 말하지 못한 기억들도. 피해자가 실수라도 하면 역시 맞을 만했다고 말하는 미처 가리지 못한 더러움을 계속 봤어도. 네 잘못 아니니까. 울지 마.”


지영이의 말에 눈물은 더 쏟아져 내렸다. 낙원도를 갔다 오면 지영이는 늘 내 옆에 있어주었다. 


“사람을 볼 때면 하나의 시간대를 선명히 비춘다고 느껴져. 우리가 어렸을 때. 그때의 사건이 성격을 형성하기도 좋은 추억이 되기도 삶의 방향을 잡기도 하잖아. 방관자, 가해자, 그리고 나까지 우리는 그때 과연 무엇을 빼앗겼을까? 무엇을 잃고 싶지 않았을까? 우리는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무엇을 선택해 왔을까?”


지영이는 손을 꼭 잡은 채로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우리의 차는 도시의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도로를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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