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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러너13의 버블 2

단편소설

러너 13은 깜깜한 버블 안이 두렵고 무서웠지만 마치 이전에도 가본 것처럼 무의식적인 편안함을 느꼈다. 러너 13의 버블 안에선 환부에 드러난 비늘이 더 벗겨졌다.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SP표식을 미리 암시장에서 구매했다면’


‘러너의 설계자가 나를 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베타테스트용으로 만들어진 걸까?’


러너 13의 생각을 할수록 버블의 표면은 살갗을 녹이는 재질로 변해 러너 13의 비늘조차도 따가워졌다. 러너 13은 결국 비늘도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러너 13은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러너 13은 피가 나는 상태로 잠시 버블에서 잠들었다. 


“쿵쿵.. 어이… 거 안에 계쇼? 그만 나와야지 않겠소. 거기 오래 있음 결국 죽소.”


“쿵쿵”


누군가 러너 13의 버블을 두드렸다. 그는 손전등 같은 빛으로 버블 안을 들여다보려는 것 같았다.


“어떻게 나가나요? 전 여기 자주 들어와 봐서 압니다. 차라리 이곳이 편해요.”


러너 13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의 버블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이 찾을 것이오. 그러나 버블 속에서 죽는지도 모르고 자는 자들에게 알림처럼 깨우고 다니는 것이 나의 일이오. 그러나 자신이 늘 버블에 올 거라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이만 버리는 것이 낫겠소. 여기에 다시 오지 않고 살아가는 러너도 분명 봐왔소. 그리고 여긴 치료를 위해 온 것이오. 그럼 이만 갈 테니 잠들지 마시오.”


러너 13의 버블은 점차 환해지더니 버블 안이 온통 모니터처럼 바뀌었다. 그리고 그 모니터 같은 평면에서 버블에 갇혔었던 러너 13의 모습들이 비쳤다. 매번 버블을 깨는 모습이 달랐다. 러너 13을 가두던 버블 13도 갈수록 진화했다. 


거기서 또 비늘을 숨기기에 급급한 러너 13, 얻어터진 채로 울고 있는 러너 13, 또다시 러너 13을 깨우는 경비원 같은 그들이 여전히 있었다. 지금보다 더 심하게 다쳤을 때가 보이기도, 망치로 깨부수고 버블을 깨기도, 미처 다 낫지 않은 채 다른 러너들을 손을 잡고 나가기도 했다. 


러너 13은 시간을 들여 자신의 영상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문득, 러너 13은 이 버블 안까지 들어오는 일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고치기 위해 늘 리커버리를 찾아온 것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매번 버블을 깨고 나온 사람도 러너 13 본인이었다. 


러너 13의 생각이 정리가 되자마다 번개를 내려 맞은 듯한 고통이 러너 13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였다. 그렇게 러너 13은 한번 제대로 까무러쳐졌고, 그 후 러너 13의 몸에 새로운 살갗들이 돋아나 마치 재탄생하는 듯한 완벽한 러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러너 13은 맨 손으로 버블을 내리쳤고, 버블은 산산이 깨진 채로 러너 13을 드넓은 평원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 캐쳐 군대들이 리커버리 존까지 들어와 러너 13을 포획하려고 했다. 그들은 또다시 뜨거운 열을 내뿜는 광선을 러너에게 들이밀었지만, 러너의 살갗은 한 부분도 타지 않았다. 그들은 온도를 올려보았지만, 러너의 살갗은 잠시 타는 듯해도 새로운 살이 금방 차올랐다. 


러너 13은 그들을 상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유유히 자신이 열었던 시공간의 문으로 향했다. 

그 앞엔 러너의 지도자가 서있었다. 


“이번에도 성공했구먼, 잘 가시게나. 친구. 이번엔 오랫동안 안보길 바라겠네.”


러너 13은 시공간의 문을 통해 걸어 들어가며 알아차렸다. 러너의 지도자의 얼굴이 참 익숙하고 누구를 닮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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