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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러너13의 버블


러너 13의 팔은 화상을 입은 듯하게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벗겨진 살갗 너머엔 표피나 진피 혈관이 아닌 비늘이 있었다. 러너 13은 발갛게 벗겨진 팔을 감싸 안으며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러너 13은 방 한편에 놓인 나무 책상 밑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손으로 감싸 쥔 것을 놓자 고통이 극대화된 듯했다.  


“아악…. 쓰읍… 하…”


러너 13의 비늘이 드러났다는 것은 러너 13의 생존과도 연결되는 일이었다. 비늘이 많이 노출될수록 이것은 러너 13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과 같기 때문이었다. 비늘이 다 드러나는 순간 더 많은 공격이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러너 13을 노리는 인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도 있는 것이다. 인간들은 러너들을 다양한 형태로 불렀다. 외계인이 인간으로 둔갑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러너들이 결국 지구를 탈환하여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러너들은 다만 그렇게 태어났고 인간과의 공존을 원했지만 인간은 숨겨져 있는 러너들을 색출해 순수 인간만 남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것만이 인류가 평화롭고 질서 있게 살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다 러너 13이 그들의 레이더 망에 걸린 것이었다.


보편적 인류가 지녀야 할 모범규정 82개 조가 배포된 이후 사람들은 82개 조의 기준을 바탕으로 적게는 마을 단위부터 국가 단위까지 사람을 재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과된 자들은 투명하지만 발광성 액체가 담긴 실리콘 건 같은 총으로 쇄골 밑에 SP라는 이니셜을 새겨 나갔다. 그들은 평상시 SP표식을 확인하진 않았다. 다만 인간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 인간들의 마음에 불안이 생겨나면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 있는 경보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각자의 집엔 경보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었고, 한 인간의 마음에 불안이 샘솟으면 경보 시스템을 눌러 자신의 상태를 표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이들도 경보시스템을 눌러 시스템의 주파수가 일치하면 그들은 군대를 결성하였다. 그렇게 모인 군대를 여기선 캐쳐라고 불렀다. 캐처들은 주로 러너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러너들을 붙잡아 그들을 파편화시킨 후 경보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에너지원에 그들의 파편을 던지면 경보시스템은 더욱 기민하고 단단한 방공막을 형성해 캐쳐들의 마을을 지켰다. 


러너 13은 일단 회복이 가장 중요했다. 러너 13은 책상 상판 밑에 웅크려 들어가서 벽을 향해 손을 대었다. 손을 댄 순간 초록색 빛이 벽에 원을 그리며 휘감기 시작했고, 문이 열렸다. 러너 13은 걸어가는 듯 기어가는 듯 그 문을 통과했다. 


“들켰나 보구나.”


러너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러너 13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커버리 존으로 가겠느냐. 거기선 치료를 위해 오히려 환부를 드러내야 한다. 그렇게 치료과정을 겪다가 오히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네가 여기서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받아들일 것이다. 모든 것은 네 선택에 달렸다.”


지도자가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러너 13은 잠시 고민하더니 가겠다는 표시를 했다. 


리커버리 존에 들어가니 드넓은 평원에 수많은 러너들을 담은 커다란 버블들이 공중에 떠있었다. 버블은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각자의 색과 재질과 투명성이 다 달랐다. 러너 13이 버블들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가 서자 원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버블을 만들었고 러너 13을 감쌌다. 


러너 13은 자연스럽게 버블 안에 들어가 공중에 띄워졌다. 러너 13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버블들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안에 있는 러너가 버블을 깨고 나오려는 듯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버블이 있었고, 어떤 버블은 깨졌는데 그 안에선 러너가 아닌 캐쳐가 버블을 깨고 러너가 들어왔던 것처럼 자신의 손을 뻗어 시공간의 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어떤 버블은 마치 시간이 영원히 멈춘 듯이 미동이 없는 버블도 있었다. 그 버블은 강철재질처럼 보였는데 타임캡슐처럼 러너를 잡아먹은 건 아닐까 러너 13은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의 버블구경을 마치자 러너 13의 버블도 불투명해졌다. 


불투명해져 시야가 차단되자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러너 13은 버블에 갇혔다. 러너 13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버블을 흔들어 보기도 두드려 보기도 했지만 버블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사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러너 13이 버블을 깨뜨릴만한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어둠 속에서 애쓰던 러너 13은 결국 버블을 나가고자 했던 것을 보류하고 태아처럼 웅크려 들었다. 


마을의 경보 시스템이 울리자 러너들은 숨기 시작했다. 온 마을 출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캐처들은 뜨거운 불로 이뤄진 광선을 모든 행인들에게 들이댔다. 그래서 발광물질인 SP표식이 나타나면 그들을 놓아주었다. 러너 13도 피하려 했으나 행렬에서 도망칠 수 없게 인파가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검문소에 러너가 다다랗을 때 그들은 러너 13에게도 광선을 들이댔고 러너의 어깨에선 SP표시가 아닌 타 들어가는 살갗 속 비친 비늘이 있었다. 


“러너다!!!!! 러너를 발견했다.”


러너 13은 도망치려고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이미 캐쳐의 군대들이 러너를 재빠르게 결박했다. 


“아주 훌륭한 에너지원이 되겠어, 땔감처럼 잘게 쪼개 던지면 되겠어.” 


경보 시스템은 중앙 에너지원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는데 그 형태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물질들로 이뤄져 있었다. 기본 원료는 캐쳐들의 불안이었지만, 러너들의 조각이 유입되었을 때 중앙 에너지원은 더욱 강한 에너지원으로 커져갔다. 


그렇게 러너 13은 캐쳐들에게 붙잡힌 채 뜨거운 불길로 이뤄진 광선으로 팔다리 할 것 없이 지져졌다. 그렇게 드러나는 비늘을 보며 캐쳐들은 자신들의 광산에서 금을 발견한 것처럼 낄낄대며 흐뭇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또 다른 러너들도 괴로워했다. 사실 마을의 경보시스템이 없더라도 러너와 캐쳐가 살던 세상은 평화로울 수 있었다. 분명 캐쳐들이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보임에도 러너들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숫자와 세력이 부족했다. 그렇게 러너 13은 한껏 벗겨진 채로 추가 작업을 당하기 위해 결박된 상태로 캐쳐 군대의 본거지로 수송됐다. 


러너 13이 만신창이로 끌려가다가 수송차량이 험준한 산길에 접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커다란 돌부리에 바퀴가 걸리더니 러너 13이 실려 있던 화물칸의 걸쇠가 풀어졌다. 러너 13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도망쳐 풀 숲 사이로 숨었다. 


그렇게 은밀하게 숨어 깊은 지대로 이동한 러너 13은 한동안 이동하지 않으며 산속에 숨어있었다. 배고프면 열매를 따먹으며 버텼다. 그렇게 더 이상 러너 13을 찾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버려진 옷가지들로 위장을 한 채 마을로 내려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자신의 집으로 향해 달린 후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방문을 열고 책상 밑으로 들어갔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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