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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They were, are and will be.

단편소설

채팅창에 커서가 의미 없이 깜박이고 있다 없었다. 있었다 다시 없어졌다.


채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말해야 채팅 너머의 상대방을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올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 봤지만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쳐버린 그녀는 화장실로 가서 변기 위에 앉아 핸드폰 속 세상으로 도피했다. 


그녀의 눈에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핸드폰 속 화려한 왕국이 아니었다. 핸드폰 모니터를 살짝 비껴간 곳에 존재하는 샤워실 타일 하얀 실리콘 구간을 점거하고 있는 검으면서도 불그스름한 물곰팡이였다.


물곰팡이는 한참 동안 그녀를 붙들어 두었다. 


물곰팡이를 닦을 생각도 없었고 계속 물곰팡이를 쳐다보게 되는 이 상황은 생각이 밀도 높게 꽉 차서 결국 퍼져버린 ‘착란 상태’이지 않을까라고 채은은 느꼈다. 채은은 물곰팡이에 점점 집중한 나머지 화장실 바닥에 앉아 자신의 눈을 물곰팡이에 가깝게 밀착시켰다.


물곰팡이. 정신 착란. 나. 타인.


채은의 머릿속에 순서대로 나열되는 단어들이었다. 단어들을 연결시켜 보니 채은이 하고 싶은 말이 문장이 되었다.


‘착란 현상, 증상은 지금 나만 겪는 것인가? 아니면 인류 공통의 순간인가?’


문장이 완성되자 채은은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서 일어나 다시 책상에 앉아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부 명령 3호가 발동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예요. 제가 연락해 본 많은 사람들이 제 생각에 동의하고 있어요. 밖으로 나가는 일은 위험한 일이라고]


타이핑을 마친 채은은 상대에 반응에 대한 불확실성, 시간에 대한 초조함을 개의치 않는다고 믿으며 손톱을 입술에 갖다 대고 끝부터 중간 머리까지 골고루 잘근잘근 씹었다.


1분, 3분, 5분, 10분 그녀는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자신의 메시지를 상대방이 빨리 읽기를. 그래서 반박이든 굴복이든 어서 반응을 보여주길 바랐다. 기대와 달리 그녀의 메시지는 읽음 표시로 전환되지 않았고 자신도 답이 늦었다는 사실은 무의식에 남겨둔 채 초조함이 포기로 바뀔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채은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띠링-』


원두를 분쇄기에 넣고 커피가루가 쏟아질 무렵 그녀의 노트북에서 알림이 울렸다.


그녀는 그라인더가 갈아준 원두가루를 잡고 있던 포터필터를 싱크대로 던진 후 빠르게 책상 앞으로 달려갔다.


{밖으로 나가는 일은 왜 위험한가요?}


그녀는 그가 사라져 버릴까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밖엔 엄청난 위협이 도사리고 있어요. 너무 많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의 연속이라고요.]


채은은 바로 엔터키를 눌렀다.


{평생 나갈 수 없어도 당신은 행복할까요? 당신의 삶. 사랑하는 이들을 네모난 공간들 속에서 만나는 것들이요. 스스로를 유폐해 버린 존재로써.}  


아주 성가신 상대라고 채은은 생각했다.


공감을 모르는 존재,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그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만약 인공지능이랑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건 내가 이기고 질 문제가 아니겠다.’


치열한 사고체계가 채은의 머리를 쉴 새 없이 때리고 있었다. 정립되고 부서졌다가 다시 정립되고 어떠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자신이 마치 목표점을 찾고자 하나 어디가 영점으로 조준해야 할지 보이지 않아 날뛰고 있는 한 마리 맹수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를 유폐시킨 사람들…. 스스로를 유폐시킨… 두려움에 굴복한….’


채은은 상대방이 던진 마지막 문장에 꽂혔다. 


'그는 무엇일까. 무언의 흐름을 읽고 있는 자. 인공지능. 리더. 휴머노이드.' 


그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보단 자신의 흥미를 강하게 끌어버린 상대의 질문에 채은은 몰입하기로 결정했다.


‘네모난 공간에 갇힌 우리, 모니터에 갇히고, 자신만의 방, 집이란 박스에 갇힌 사람들. 아마 이 모든 것은 각자 자신의 뇌일지도 몰라. 뇌 속을 마치 현실이라고 믿으면서 방에 갇힌 걸까?’ 


[어제도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은 묻지 마 살인이 뉴스에 나왔어요. 남의 일이어야 뉴스인 겁니다. 그게 나의 일이 되면 그건 나의 종말이 되는 거예요. 살아있어야 내일도 있는 겁니다. 제가 살아있어야 이 채팅도 존재할 수 있는 거죠.]


자신의 논리에 자족하던 채은이 채팅을 보내자 곧이어 모니터 하단에 작은 메시지 상자가 올라왔다.


{폐부를 깊숙이 찔러야 진실에 다가갈 것 같군요.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실을 보는 것은 모니터가 보여주는 세상일까요? 당신의 눈으로 직접 바라본 세상일까요? 거기서 끝인가요?}


연속으로 띠링 거리는 알림 소리가 울리면서 메시지 창은 두 번 세 번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걸어 다니는 시체에 불과하지요. 이것은 무덤에서 시작하는 생존 게임과 같은 것입니다. 이미 죽음이 예정되어 모두가 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으나 누가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있는 생을 살 것인지에 대한 문제란 말입니다. 이 게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태어난 모든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지만 모두가 살아남을 순 없기 때문이죠.}


354일. 8496시간. 509760분. 30585600초 …601초 602초 603초. 채은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머무른 시간이었다. 


채은은 자신은 히키코모리나 은둔자로 정의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354일 전 바깥에선 너무 많은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 계속 다치고 죽어나갔다. 사람들은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의 궤도를 줄여나갔다. 채은의 물리적 궤도도 조금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친구들과 가족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모니터를 통하면 만날 수 있었다. 몇 년 사이 증강현실이 많이 발달하여 그들은 종종 옆에 있는 것처럼 모니터를 뚫고 나오기도 하였다. 논리적 알고리즘의 질문을 던지면 이러한 소통에 결핍이 존재할 수 없기에 채은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오만해 보이는 채팅 상대방이 채은을 흔들고 있었다.


채은도 오랜 유폐생활이 지겨워 134일째 되던 날 조심스럽게 문 밖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거리에 사람들은 매우 적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하여 음식이나 물건을 전달하는 사람들뿐이었고 그들도 매우 단단히 무장을 한 상태였다. 거리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있었으나 범죄는 마음으로부터 오는 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예방할 순 없는 일이었다.


거리로 나선 채은은 나름 무장을 했음에도 눈에 띄는 가벼움과 연약함이었다. 채은은 잰걸음으로 카페에 도착해 창문 사이로 커피를 주문했다. 134일 전과 달리 카페의 인테리어는 재화와 물품을 교환하는 조그마한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곳이 밀폐되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커피가 나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채은은 감각적으로 자신을 누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걸음을 재촉하다 상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뒤를 본 채은은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헬멧과 두꺼운 가죽 재킷을 입은 사람 두 명이 채은의 근거리에서 손에 날카로운 것을 든 채 채은을 따라오고 있었다. 괜히 나왔다는 후회조차 할 시간이 머리를 굴려 아무렇지 않게 걷다가 채은이 사는 건물의 현관이 눈앞에 보이자 미친 듯이 달렸다. 


채은은 현관 도어록을 열고 들어가 안에서 잠금을 한 뒤 문을 잡고 한참 서있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숨은 가빠오고 다리에 힘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채은은 진정되지 않은 채로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기억이 당신의 발목을 붙잡아도 불안함이 당신을 집어삼키려 해도 다시 한번 문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행운도 불행은 인생에 찾아왔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언제 다시 올 건지 예고하지 않은 채 말이죠. 거대한 왕국을 세웠던 찬란함도 잔해조차 남지 않은 자리에 머무르다 보면 그들이 더 이상 반갑지 않습니다. 기쁘고 행복할 때도 두렵고 슬플 때도 내가 불안 해질 테니까.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신이 마치 내버려 두는 듯이 아니면 우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듯이 판을 거칠게 흔듭니다. 당신이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문밖으로 내딛는 한걸음에 담긴 투지뿐이란 걸 깨달을 겁니다.}


채은의 메시지 창의 커서가 다시 끝을 모르고 깜박이고 있었다. 


채은은 무언가를 치다가 다시 지웠다. 그리고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 정적을 이어나갔다.


댕-댕-댕-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무거운 종소리가 채은의 공간까지 깊숙한 파동으로 들어왔다.


댕-댕-댕-


매 정시가 되면 울리는 낮고도 깊은 청아함을 담은 소리였지만 채은의 마음에 종소리는 그 어떤 날카로운 고음의 소리보다 거슬렸다.


[저 종소리가 그곳에서도 들리시나요?]


{네, 들립니다.}


[제가 나가고 싶어진 이유는 당신의 말에 설득당해서가 아니라 종소리 때문입니다. 저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저 종소리를 멈추어야겠습니다. 훌륭한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대화가 싫으면서도 미친 듯 좋았습니다. 기회가 또 닿기를 바라겠습니다.]


채은은 나가고 싶었던 자신의 오랜 갈망을 깨닫게 된 것이 상대방 덕분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더 이상 나눌 대화가 없을 만큼 상대에게 설득당한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공간에 갇히기 전에 자신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유능하고 고상한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듯 형식적으로 대화를 갈무리 지었다.


{종소리를 멈추러 가면 종을 치는 사람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저와 일면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 참 꽤 있어 보이는 법한 말을 한참 늘어놓으며 제 소개를 안 했군요. 3년 전 **역 흉기난동 사건 기억나십니까? 그 사건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입니다. 제 소개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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