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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다이버시티(divercity)

1. 


허리 높이로 설치된 나무 창문을 양손으로 연 여자는 다시 새하얀 이불로 들어갔다. 이불속에서 돌연히 그녀의 손을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는 끌어당기는 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렇게 몸과 몸이 밀착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칼을 넘기면서 그녀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 후 자신의 팔을 벌려 여자를 꼭 끌어안았다. 여자가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끌어안고 놓지 않는 그였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쭉 밀치며 침대에서 일어나서 헝클어진 머리를 높게 포니테일로 묶었다. 


“너 이제 가.”


남자는 금세 일어나지 않으려던 마음을 누르고 바로 일어나 여자 뒤에서 껴안았다. 그리고 여자에게 속삭였다. 


“왜 그래. 우리 좋았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고.”


여자가 대답했다.


“넌 대용품일 뿐이야.”


남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용품이란 단어는 그 이상의 설명을 바랄 필요가 없었다.


“미친. 사람 기분을 참 뭐 같게도 만드네. 결국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 네가 간절히 바라는 그 사람이 네 옆에 없는 것처럼. ”


남자는 침대 밑에 널브러져 있던 자신의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문이 반동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세게 젖히고 나갔다.


여자는 화장대에 놓인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재즈를 틀고 창문 옆 의자에 앉아 창문으로 다리를 꼬아 올렸다. 



여자는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었다. 


“맞네. 미친년. 사랑에 미치고… 그리고…에 진실한” 여자가 묵음으로 말한 부분은 그녀 말고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혼잣말을 마친 여자는 화장대로 가서 붉은 립스틱을 집어 들어 입술에 빈틈없이 발랐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씩 웃어 보였다. 그녀의 눈에 새 뿌연 무언가가 차올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웃고 있었고 왼손엔 담배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 창문을 향해 걸어가 창문에 팔을 걸치고 풍경을 바라봤다. 


풍경의 중앙에는 커다란 크리스탈로 구성된 하늘 끝에 닿을 것만 같은 첨탑이 있었다. 


그 첨탑 주변엔 항상 첨탑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모든 사람들이 첨탑에 들어갈 순 없었다. 첨탑에 들어가기 위한 티켓은 누구에게 주어지는지 얼마나 가질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들어가는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가 있을 뿐.


여자는 여전히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구경할 뿐이었지만 여자의 화장대에서 티켓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2.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가 흘러나오는 방 안에서 남자는 뷰러로 자신의 속눈썹을 집었다. 그리고 어깨쯤 오는 핑크색 중단발을 커다란 리본이 달린 핀으로 집었다. 체형이 그대로 들어나는 블랙가죽의 바디슈트를 입고 핸드백을 메고 5센티미터의 굽이 달린 구두를 신고 문밖을 나섰다. 그리고 첨탑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내 지하철을 타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야. 오른쪽 11시 방향 저 남자.” 하면서 한 사람이 자기 옆에 선 사람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헐, 대박. 첨탑에 가나? 저 정도는 돼야 도전해 볼 수 있는 건가? 저렇게까지 해서 가야 해?”


옆에 서있었던 사람이 대답했다. 


남자는 노이즈 캔슬링이 되지 않는 이어폰 너머의 소리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뉴스 보면 여장 남자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많다잖아.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다른 칸으로 가자.” 


처음 말을 시작했던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선글라스를 쓰더니 자기 친구에게도 선글라스를 건넸다. 그녀들의 시야는 이내 무채색으로 변했다. 그들은 여전히 수군거리면서 지하철 옆칸으로 이동했다. 


남자는 다이버시티 센트럴역에 내렸고 첨탑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대기 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첨탑에 들어가기 위한 어떠한 기준도 없는 것 같은 흐트러짐 그 자체였다. 자신의 경쟁자들이 많아보였지만 남자는 이만하면 자신의 개성을 제대로 살렸다는 자신감으로 기다렸고 줄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남자의 차례가 다가왔고 매표소 직원은 티켓을 요구했다. 남자는 자신의 오른손을 새끼손가락부터 천천히 피기 시작하면서 티켓이 생성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남자의 손에는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뒤에 대기 손님이 많습니다. 티켓이 없으면 입장이 불가합니다.”


남자는 결국 보안관에 의해서 쫓겨났다. 그리고 첨탑 주변에 흐르던 강가로 거칠게 패대기 쳐졌다. 


“대체, 왜. 나만의 개성을 살렸는데 왜?”


남자는 충격을 받아 흐르는 강물에 비친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럼에도 남자는 포기가 되지 않았고 다시 첨탑으로 향했다. 


첨탑의 입구에 다다른 남자는 자신의 시야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첨탑으로 들어가던 사람을 발견했고, 남자는 빠르게 개찰구를 뛰어넘어 그 남자를 붙잡았다. 


남자는 입장하던 남자를 거칠게 붙잡아 뒤돌려 세웠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착장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괜한 억울함이 물밀듯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입장하던 남자에게 소리쳤다. 


“왜 너는 되고 나는 안되는데!!!!!!!! 왜!!!!!!!!!!!” 


남자는 풀리지 않는 억울함에 입장하던 남자의 양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흔들리던 남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을 흔들던 이를 향해 말했다. 


“카피 캣.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뒤틀린. 차라리 그 걸 드러내서 가져오지 그랬니?” 


말을 마친 남자는 실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의 어깨에 올려져 있던 남자의 손을 가볍게 털어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남자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내가 왜. 난 특별해. 난 특별해. 특별하다고!!!!”


3. 


“다이버 시티의 이 첨탑이 뭐라고 저 아랫사람들은 여기만 바라보면서 사는 걸까?” 


첨탑 가장 높은 곳 창가에 서 있는 한 여자가 물었다. 


여자의 옆에 나란히 서서 술을 들고 첨탑 아래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희소성이 불러내는 욕망이지. 특별해지고 싶은. 여기 올라와 있는 너는 어때? 저 아래있는 사람들이 욕망하는 게 다 갖춰진 곳이잖아.”


“글쎄, 그냥. 똑같아. 저 아래서 살아갈 때나 이 첨탑 안에 왔을 때나 언제든 왔다 갔다 할 수 있잖아. 저 아래 사람들이 느끼는 우월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아. 살아있으니 숨 쉬는 것처럼 이 곳이 자연스러워. 나는 똑같이 살아갈 뿐이니까.” 여자가 말했다.


“저 사람들은 알까? 다이버 시티에 존재하는 첨탑은 크리스털 첨탑인 여기가 유일한 게 아니라고. 이 마천루에서 봐바. 도시의 곳곳에 첨탑이 세워져 있잖아. 사람들은 다른 첨탑들을 보지 못하니까 오히려 우리가 보는 저 여러 색의 첨탑들이 환각이나 신기루처럼 느껴져. 그래서 무조건 여기로 몰려드는 거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텅텅 비어있는 첨탑들이 무색하네.” 


남자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며 씁쓸히 웃었다. 


그때 크리스털 첨탑 꼭대기에 위치한 종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아닌 예쁜 자개모빌의 소리가 첨탑에부터 시작해 다이버 시티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갔다.


소리를 들은 여자와 남자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이 서있는 공간이 다이버 시티의 한 골목길로 바뀌었고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여자의 입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남자에게도 향했다. 


‘세상엔 너도 있고 나도 있으니 어찌됐든 행복한 거 아니겠어? 이 넓은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지금처럼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 말이야.’


여자의 말을 들은 남자가 대답했다. 


‘맞아. 서로를 닮은 사람을 찾아내는 순간 이게 얼마나 큰 위로야. 우린 자신을 빨리 마주한 케이스 정도로 해두자. 여전히 서로가 가야할 길이 있음에도.’


대화가 끝난 두사람이 서 있는 다이버 시티에는 여전히 자개모빌 소리가 가득했고 그들은 서로를 보며 천천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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