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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They were, are and will be 2

 단편소설

채은은 더 이상 자리에 앉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장비들을 찾기 시작했다. 채은은 며칠에 걸쳐 추가로 필요한 물품을 타인의 이름으로 배송시켰다.


럼에도 섣불리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미친 듯이 운동만 했다. 자신이 몸의 근육변화를 체감한 순간 채은은 호구를 착용하고 가방에 장비들을 넣은 채 도어록 문을 열었다.


채은은 이미 사람이 없는 거리를 숨죽여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종탑만을 응시한 채 걷고 은신하고 다시 재빠르게 이동했다. 저번 외출과 달리 아무도 채은 주변을 따라오지 않았다.


'눈만 내놓은 헬멧 덕분인가?'


생각하는 사이 다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채은은 가져온 망원경을 통해 사방이 뚫린 종탑을 바라보았고 거기 한 남자가 종에 연결된 줄을 잡고 자로 잰듯한 보폭으로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자 종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채은은 이내 눈길을 거두고 이동하여 종탑 앞에 도착했다. 


종탑의 출입문은 쇠창살로 만들어져 있었고 중앙에 열쇠구멍이 있었으며 그 주위론 쇠사슬이 여러 번 감긴 채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그 틈으로 바라본 건물 안은 회색빛 시멘트 바닥과 검은 그늘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엘리베이터에 계기판이 유일한 빛처럼 보였다. 


채은은 가방에서 챙긴 펜치를 꺼내 들어 쇠사슬의 위아래를 꽉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힘을 주니 쇠사슬 고리 하나가 부서졌다. 그리고 다음 고리, 마지막 고리를 끊어내니 쇠사슬은 뭉툭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자물쇠까지 떨어진 문의 열쇠구멍을 가져온 펜치로 강하게 내리치자 문이 채은 쪽을 향해 스르르 열렸다.  


채은은 일층 엘리베이터를 탔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G와 H로 표기된 단 두 개만 있었다. 채은이 H버튼을 누르자마자 엘리베이터는 위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채은은 눈앞에서 자신의 몸이 10배는 들어갈만한 거대한 종이 건물 천장에 매달려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아..."


채은은 자신도 모르게 종이 주는 압도감에 탄식을 내뱉었다. 


부스럭.


채은의 탄식에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렸고 채은의 시선이 그 인기척을 향했을 때 그곳에는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한 남성이 일어났다. 


어깨를 넘어가는 장발과 쇄골에 닿을듯한 수염. 


그 사이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보였고 채은은 은둔자라면 저러한 형상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외형을 보며 자신은 은둔자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듯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는 누가 오겠지라고 생각은 했는데. 정말 뜻하지 않은 순간이군." 


방금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말했다. 


채은은 남자가 자신과 같이 보호장비를 전혀 착용하지 않고 면인지 옷인지 모르겠는 것만 걸치고 있는 것을 보며 헬멧을 벗었다. 그녀의 머리가 땀에 젖어 물기와 머리가 동시에 흩날렸다. 


"죄송하지만, 종을 그만 쳐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세상에 시계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알림조차 수많은 전자기기들이 대체하고 있지요. 그러나 당신이 종을 치시기에 제 시간을 방해받고 있습니다. 작업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종소리가 묘한 불쾌감을 줘요. 마치 제가 어디로 가야 하는 사람처럼 말이죠."


채은은 떨리지만 내색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남자는 채은을 흥미롭다는 듯이 잠시 봤으나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건 불가합니다. 이것은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자 형벌이기 때문이요."


"무슨 대단한 것이 있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신념은 다른 곳에서 찾으시면 되고, 형벌을 받는다기엔 너무 자유로운 상태 아닌가요?" 


채은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편감이 마음에서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비꼬고 있었다. 채은은 세게 말해야 자신의 의견이 어필된다고 생각했기에 언성과 톤을 높였다. 채은은 말을 뱉으며 대화를 할 때 자신의 적절한 온도가 생각보다 쉽게 깨진다는 사실에 짐짓 놀랐다. 


"시간은 모든 것을 놓치게도 만나야 할 사람들을 정확히 만나게도 합니다. 이별이라는 것이 서로의 시간에서 밀려나는 일로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신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자 인간에게 내려진 막대한 축복이자 가혹한 형벌인 셈입니다. 자신의 끝을 모르는 시간을 살면서 어떤 이들은 죽어가고 어떤 이들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듯이 살지요. 시간에 대한 망각을 깨고자 종을 계속 쳐야겠습니다."


채은은 낯선 남자가 한 말이 기시감이 든다고 생각했다. 기시감을 샅샅이 탐구하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채팅의 상대방.


"혹시 3년 전 흉기난동 사건의 피해자를 아시나요? 저는 며칠 전 어떤 상대방과 채팅을 했는데 그 사람이 마치 당신을 안다는 듯 종탑에 가서 만날 사람에게 안부 전해달라 하더군요." 


채은은 이번엔 떨리는 목소리를 노출시켜 버린 채 말했다.  


"이 일이 형벌이라 말한 까닭은 불완전한 생명이 생명을 낳은 제 잘못에 대한 양형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나를 닮았을 것입니다. 나를 닮은 아이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는 살면서 남을 죽여본 적이 없습니다. 밖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이 너무 웃기더군요. 제가 성실히 산다고 해서 평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저는 성실하지만 가난했고 사람들에게 친절했지만 사람들은 배신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것을 찾아 떠났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제 편이 되어준다는 변치 않을 유일하다는 사람을 갈망했습니다. 갖은 노력 끝에  매력적인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여자과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동안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제 눈엔 착하고 예쁘고 날마다 새로움을 주는 여자였습니다. 


그렇게 전 그녀만 있다면 모진 폭풍 속에서도 굳건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가 돌이 채 되기도 전에 자신의 삶을 찾는다며 저희를 떠났습니다. 가난한 제가 단일하게 바라던 대상이 떠나고 전 철저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너진 제 자신이 슬퍼하기도 전에 제 뒤에서 세차게 우는 존재가 있더군요. 


죽을 용기가 없어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결혼 전 느낀 절망 그대로더군요. 애 딸린 홀아비란 동정까지 더해지니 더 가혹했습니다. 앞에선 걱정하고 뒤에선 비웃고 가십으로 소비하고 부당한 대우도 감수하라며 조언하더군요. 


육체와 정신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못하니 아이한테 하면 안 되는 짓을 했습니다. 한 번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내가 손을 올리는 것, 걷어차는 것은 아이가 잘못을 했기 때문이며 훈육이라는 과정이라 스스로도 속였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으면서도 저에게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도 썩어 들어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악마로 만든 겁니다. 아이가 그 일을 벌이기 전 제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아빠. 드디어 안녕] 


사실 한 번도 그 아이는 절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아버지라고 부를 뿐이었죠. 결국 아이는 자신의 시간에서 절 밀어낸 것입니다. 그 뒤 아이를 볼 수 있던 유일한 창구는 모니터뿐이었습니다. 제 아이가 안 나오는 모니터가 없었고 아이는 절 만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끈질긴 이 목숨이 무엇을 해야 할까 며칠을 방에 앉아 울며 고민했습니다. 떠오르는 일은 하나더군요. 


피해자 부모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는 일. 


사실 진정한 용서는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참 이기적이게 제가 가서 무릎을 꿇어야 제가 앞으로 살 수 있겠더군요. 제 앞에 벌어진 지옥에서 건짐 받을 유일한 동아줄이라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렇게 며칠을 그분들 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가 문 밖으로 나와 내게 그러더군요. 자신은 나를 용서할 수 없다고. 다만 당신이 있는 힘을 다할 때까지 여기서 종을 치기를 바란다고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할 말을 전할 때가 올 거라면서 말이죠. 


그 길로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여기로 올라왔습니다. 그가 나에게 이 일을 왜 시켰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정각만 되면 열심히 종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종을 치다 보니 매일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의 형벌 같기도 했지만 저는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을 해야 되니까요." 


남자는 말을 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울기 시작하였다. 울면서도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는 용서받을 생각이 없지만 그가 제게 안부를 전해 달라는 건... 제 종소리가 그가 머무는 공간에도 닿았다는 것이겠지요. 당신도 그 복장을 한 채 인적이 드문 거리로 나서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은 당신도 끝을 알았다는 겁니다. 


저는 정각이 아닌 시간을 살 때마다 밀물처럼 떠오르는 내 아이, 아무 잘못 없이 날아간 그분의 아이가 떠오르는 이 공간에서 끝까지 머무르다 죽을 겁니다. 


가끔은 제가 마땅히 가야 할 감옥에 가지 않는 제 상태가 가장 저주스럽단 생각을 합니다. 지옥이 아니라면 아니고 지옥이라면 지옥인 지금의 상태 말입니다. 그가 용서한다 해도 이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없습니다. 스스로 유폐된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시간의 축복을 알리는 일, 고통의 끝을 알리는 일, 제 형벌을 받는 일이 좋습니다."


채은은 그들의 불행이 자기의 불행보다 절대적으로 커 보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저 돌아갈 생각조차 못한 채 서있을 뿐이었다. 


"3년 만에 처음 가까이서 마주한 사람인 당신을 보니 반갑다. 기쁘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그런 밝고 긍정적인 감정이 마음에 차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아이 같은 사람들이 만든 상황 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듯합니다. 


근데 아가씨. 오늘 나온 순간을 기억하세요.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일, 모니터가 보여주지 않는 실재의 세상을 만나는 일, 당신의 조그마한 집과 같은 박스에서 나오는 일 모두 물리적 공간에 제한된 일이 아니란 사실을요. 우리의 불행은 결코 가볍지 않으나 그분과 제가 당신의 문제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다시 내딛는 발걸음은 당신이 갔던 길조차 처음 가는 여정처럼 느껴지게 할 것입니다. 다시 시작될 여행은 신날 뿐 아니라 고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다시 시작하려는 시간들이, 살아내려는 삶이 당신의 세계가 끝나는 죽음 앞에서 그저 사랑으로 기억되시길." 


채은은 남자의 입이 닫힐 때까지 남자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해석의 여지를 줄 만한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가 아래방향으로 표시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채은은 작은 캡슐 같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남자에게 뒤를 돌은 모습으로 문을 닫았다. 그렇게 채은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과 함께 남자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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